흑인영가란(Negro Spiritual)?


이 글은 흑인음악으로 많이 알고 있는 블랙가스펠 그리고 R&B 소울 등 여러 음악들의 뿌리인 흑인영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올려보았습니다.  



1.    흑인영가의 기원


미국 흑인을 생각할 때 보통 가장 먼저 떠오르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알렉스 헤일리의 소설 '뿌리'이며, 또 하나는 흑인 영가(Negro Spiritual)입니다. 또 개인적으로는 흑인 노예가 떠오르네요. 지금으로부터 몇 세기전평화로운 아프리카의 어느 마을에 한 떼의 노예 사냥꾼들이 나타나 흑인들을 무자비하게 잡아갔습니다. 그들은 짐짝처럼 배에 실려 백인 노예상 에게 넘겨졌구요. 이때부터 그들에겐 처참한 노예 생활이 주어질 뿐 인간적 삶은 철저하게 박탈당한다. 그들의 후예가 오늘의 아프리카인 그리고 아메리카인(African American)들입니다.

 

짐승 같이 그렇게 캄캄한 절망을 바라보며 살아야하는 삶이 그때의 흑인들에겐 삶의 전부였습니다. 때문에 흑인 노예들에게 있어서 현세는 "어서 떠나고 싶은 때"일 뿐이었죠. 그래서 그런지 그들이 매달릴 수 있는 유일한 위안과 희망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뿐이었습니다. 바이블(성경)이 알려주는 천국 이야말로 어서 가고 싶은 그들의 본향(本鄕)이었던 것이었죠. 칡흙 같은 절망과 비참한 현세에서 그들이 스스로 찾은 위안과 간절한 소망을 담은 노래가 바로 흑인 영가 즉, 오늘날의 가스펠의 모태 인 것이죠.

 

단지 피부색이 검을 뿐, 그들도 엄연한 인간이라는 사실이 백인들에 의해서 철저하게 무시된 삶. 이러한 비극은 한편으로는 흑인들 스스로에게 자유를 향한 투쟁에 처절하게 나서는 자각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대표적인 흑인영가 "주여 나는 권리를 가졌습니다". 구약성서 시편에서 가져온 이 간절한 절규, 노예의 멍에를 벗기 위한 싸움에서 그들이 외쳤던 이 절규에서 흑인 영가의 음악적, 문학적 메시지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어떤 나라, 어떤 민족의 민요에서도 이러한 절규는 찾을 수 없죠. 바로 이런 특징이 흑인 영가를 이해하는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흑인 노예들의 절망과 고통, ()과 위안, 그리고 희망이 구구절절 담겨있는 영가들은 입에서 입으로 세대에서 세대로 구전되어 그들의 생명을 지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또한 이 흑인영가는 두 세기를 거쳐오면서 미국의 전역으로 번져갔습니다. 노예의 모진 목숨만큼이나 모질고 강인하게 구전되고 전파되었던 것이죠. 흑인 어린이들은 말과 함께 이 노래를 배우곤 했습니다.

 

 

"주님을 찾을 때까지 저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저 위대한 아침이 오고""가라, 모세""내 머리 위를 넘어 하늘의 고통이 보이네""기도할 때마다 나는 성령을 보며 내 마음이 움직입니다""내가 당한 고통 아무도 모르네""깊은 강""Swing low, Sweet chariot" 등 수많은 흑인 영가들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2.    흑인영가의 학문적 연구


흑인영가가 학문적으로 다뤄지기 시작한 것은 1816년과 1821년에 데나 엡스타인이 흑인영가의 기원을 언급한 것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고, 찰스톤 에서 흑인 연구를 다루고 있는 한 기관은 1830년의 보고서에서 독특한 형태의 영가 - 흑인영가라고 부를 수 있는 성가의 존재를 언급습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영가에 대한 학문적인 여러 기록들이 등장하기 시각했습니다.

 

뉴욕에서 간행되는 주간 기독교 잡지인 '복음전도자 The Evangelist' 1856 10월에 최초로 흑인영가에 관한 아티클을 발표했는데 제목이 <흑인의 노래>였습니다. 또한 악보와 더불어 최초로 인쇄된 흑인영가는 1862년 필라델피아의 루시맥킴 양에 의해서 인쇄된 'Roll, Jordan, Roll'이었습니다. 이어서 1867 11월에 최초의 흑인영가집이 간행되었는데 '미국 노예의 노래(Slave Song of the United States)'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이 흑인영가집을 출판한 앨런(W.F.Allen)과 웨어(C.P.Ware)와 루시맥킴 개리슨은 미국 남부 여러 지역에서 136곡의 영가들을 수집하였던 것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인 영가는 남북전쟁 당시인 1860년대 까지만 해도 아직은 체계화되지는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것이 체계화된 최초의 작업은 1871년으로 기록되었구요.

 

네쉬빌의 흑인 대학인 피스크 대학의 주빌리 싱어즈(Jubilee Singers of Fisk University)가 흑인 영가를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 연주하고 악보를 보급하기 시작한 때가 1871년이었습니다. 그리고 거의 같은 시기에 몇몇 성악가들이 그들의 연주회에서 영가를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활동의 결과로 흑인영가는 영국에까지 소개가 되었습니다. 물론 오늘에 와서 이 음악은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음악 언어로 확고한 자리를 잡았을 뿐 아니라 미국 출신의 흑인 성악가들에겐 그 어떤 레퍼토리보다도 소중한 자산이 되고있죠. 아울러 오늘날 세계적인 음악언어로 자리를 잡고 있는 재즈와 가스펠 송에도 뿌리와 같은 흑인영가는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3.    흑인영가의 대표적인 곡


출처: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rg9uiqHsaWVy9W8Fgx7qbLxxho7RpfIB


흑인영가는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의 장르라기 보다는 흑인의 상징으로 발전되었습니다. 이는 음악에도 영향을 끼졌습니다. 특정한 장르의 특징, 분위기에 머물러 있지 않고 여러가지 느낌이 들 수 있게 그들의 음악 마저 발전이 되었죠. 위의 영상에는 최근 곡이 아닌 예전 곡들이 재생될 것입니다. 한번 여러 곡을 들으면서 이런게 흑인영가였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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