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음악의 정의

라틴음악은 라틴아메리카 음악을 줄인 말입니다서양의 클래식과 동양의 음악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제 3세계의 민족음악이라고 할 수 있죠

라틴아메리카 전체 음악을 가리키기 때문에 중남미 음악이라고도 불립니다. 아메리카 대륙  스페인(에스파냐) 포르투갈의 영향을 받은 지역을 보통 

라틴아메리카 라고 일컬은데, 이런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음악 외에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의 음악과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와 아메리카 대륙에 살게 된 흑인의 음악도 라틴음악의 형성에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 음악은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음악 인디언들의 음악, 흑인의 음악이라는 3개의 요소가 다양하게 섞여 혼합된 음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살사(SALSA)

 

현재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Salsa(살사)의 음악적인 한 장르는 쿠바인의 대중음악과 민속음악에 뿌리를 둔 "Latin Music"(라틴음악)으로 우리 대중에게 쉽게 알려져 있으며 또한 재즈의 구성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은 한층 더 강한 음악적인 의미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름하여 "Salsa(살사)"의 문학적인 의미는 스페인 말로 "sauce"(양념)이라는 뜻이며 1960대에 유행하게 되어 아주 뜨겁게 Afro-Cuban(아프로큐반)이라는 음악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Salsa(살사)를 공부하자면 쿠바를 빼먹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쿠바인들이 Salsa(살사)에 대해서 많은 공언을 했기 때문이죠. Puerorico, Venezuela, Mexico, Colombia, The Dominica Republic Salsa의 발전에 많은 공헌을 했지만 그래도 쿠바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초창기의 살사의 음악적인 장르는 결코 라틴 음악으로 묘사되어 지지 않았고 많은 연주인들 중 특히 평생을 연주와 음악 속에서 살아온 나이든 연주인들 만이 오로지 그들의 방식대로 살사를 선호 해왔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에 와서야 서서히 그러한 간격을 깨트리고 함께 연주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면 Top Latin Star가 출연한 "A New Salsa Music TV show"라는 대대적인 Show program을 통해서 비로소 "살사 쿠바나"로 쿠바인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인정을 받기 시작했던것이죠.

 

Salsa(살사)는 이 이전까지 댄스리듬 으로나 음악적인 한 장르로서도 인정 받지 못했으며 단순히 그 음악적인 명맥만을 유지해 오기만 했습니다. 작곡가인 Ignacio pineiro(1888~1969) Echale Salsita(1920년대경)라 는 곡을 발표했을 때 많은 댄서들은 다급하게 연주인 들을 재촉하여 라틴 음식을 만들 때 필요한 자극 있는 양념(Salsa)맛을 참조하여 토착적인 음식의 강한 맛을 내서연주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춤에 사용되어 졌죠

 

Salsa(살사)는 초창기 라틴음악의 스타일로부터 완전히 구분 되어지며 Puertorican New Yorker들에 의해 발전된 New York Sound로 정의를 내릴 수도 있습니다. 음악적인 기원은 몇 가지 상반된 견해를 내릴 수도 있으나 재즈나 록의 음악적인 어휘에 관심을 더한 쿠바 음악속에 대장간과도 같은 장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Salsa(살사)의 음악형식은 많은 리듬 스타일과 음악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Salsa(살사)를 이해 하려면 쿠반 음악이 흑인들과 유럽의 음악과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인지하셔야 됩니다. 그리고 많은 문화들이 합쳐서 Salsa의 독특한 느낌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Salsa(살사)의 특징을 말하자면

첫째, 악기, 댄스, 댄스, 멜로디(선율),가사 등 여러가지 음악적 요소가 특이하게 발전을 했습니다.

둘째, 드러밍이 특이해서 쿠바에서도 가장 눈에 뜨이는 점이다. 옛날에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이 쿠바로 갔을 때 그 사람들이 갖고 있었던 드럼스타일을 살릴 수 있었던 것이죠. 거기에 특이한 드러밍 스타일이 나왔던 것입니다.

셋째, 살사의 노래가 음악과 잘 조화 된다는 것이다. 살사의 기막힌 박자가 쿠바의 대중성과 연결이 됩니다.


아프로-큐반 음악에서 Salsa(살사)는 라틴 퍼커션이 주가 되기 때문에 Salsa(살사)를 하려면 먼저 퍼커션부터 배워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고적으로 Salsa(살사)와는 조금 틀린 것이 있는데 룸바, , 단잔등이 있다. 이런 장르는 아프리카, 유럽인과 종교적인 것들에 의해 영향을 받아서 생겨난 것입니다. 이쯤에서 참고적으로 브라질 음악의 대명사격인 삼바와 보사노바의 유래에 대해서 잠시 둘러볼까요?. 현재 우리에게 알려진 라틴음악을 분류하자면 세부적으로 여려 장르가 있겠지만 크게 나누면 중남미의 Salsa(살사)와 브라질의 삼바와 보싸노바로 구분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Salsa(살사)음악이 어떤 음악인지 한번 들어볼까요?


ROCK

 

록 음악은 1950년대 초 미국에서 생겨난 대중음악의 한 형식입니다. 록은 대개 보컬, 전자기타, 그리고 강한 백비트(록음악 특유의 강한비트)로 구성되며, 백비트는 색소폰과 같은 여러 종류의 악기들에 의한 스타일이 일반적입니다. 그리고 젊음의 기쁨을 찬양하거나 때로는 젊은층이 가진 욕구 불만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l   ROCK의 명칭 및 정의

록은 1950년대 로큰롤(Rock and Roll)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록이라는 용어는 정의하기 애매한 구석이 있지만 때때로 여러 장르들이 모호하게 섞여있는 것, 이를테면 소울, 헤비메탈 심지어는 힙합을 포함하는 것까지, 나타내는 말로 쓰입니다. (넓게 보자면 로큰롤과 같은 의미를 지니며 좁게 보면 로큰롤과 다른 의미를 지고 있습니다.)

 

l  ROCK의 특징

록 음악의 사운드는 전통적으로 전기기타를 중심으로 하며, 베이스 기타 그리고 드럼과 심벌이 포함된 드럼 킷을 사용합니다. 피아노나 하몬드 오르간, 신디사이저와 같은 건반악기도 역시 자주 사용됩니다. 록 밴드는 일반적으로 보컬리스트, 리드 기타리스트, 리듬 기타리스트, 베이시스트, 드러머 등의 역할을 나누어 맡는 둘에서 다섯 정도의 멤버로 구성됩니다. 이 일반적인 형태는 버디 홀리가 고안해냈고 비틀즈가 확립하기도 했죠. 록 음악은 전통적으로는 백비트가 있는 4/4 박자의 반복적인 리듬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리고 스타일적으로 매우 다양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으며, 복잡한 역사와 다른 장르의 요소의 잦은 유입 등의 이유로 록이란 무엇인가를 음악적으로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l  ROCK의 역사

 

록음악은 처음 시작된 후 급속도로 퍼져나가 전세계 젊은 세대의 문화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1950년대 초 미국에서 처음 생겼을 때는 로큰롤이라고 불렀는데, 기성 세대들은 로큰롤을 한 때의 유행으로 받아들여 무시하거나 사회에 대한 도전이라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기성 세대는 이전에는 스탠다드 팝을 즐겼습니다.) 그렇지만 1960년대 중반, 로큰롤이 음악 형식의 하나로 자리잡으면서 폭넓은 관심을 끌었고, 1960년대 후반에는 록음악의 뿌리였던 블루스와 컨트리 음악에서 벗어나 간단히 록음악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록음악은 음반사업뿐만 아니라 영화, 패션, 정치 풍조에까지 영향을 미쳤으며, 음악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음악과 결합하면서 오늘날까지 계속 발전해오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히피 무브먼트, 모드 사조, 비트 사조 등이 있죠.

 


l  ROCK 장르의 변천사

1940년대 재즈가 점점 어려워짐에 따라 대중에게서 멀어졌습니다. 재즈의 쇠퇴와 록의 도래 사이의 과도기 시절인 1950년 대 초반에는 스탠다드 팝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대표적인 가수로서는 빙 크로스비, 프랭크 시나트라, 팻 분, 냇 킹 콜 등이 있었습니다. 미국 사회의 주류였던 백인 기성 세대들이 스탠다드 팝을 즐겼다면 비주류 계층인 흑인들은 블루스 음악을 즐겼으며 농촌의 백인들은 컨트리 송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블루스 음악은 스윙 재즈의 영향을 받아 곧 리듬 앤 블루스로 진화했구요. 그리고 컨트리 송은 여러가지 형태로 발전을 하고 있었는데요. 우리나라의 리듬 앤 블루스 음악과는 달리 보통의 리듬 앤 블루스는 초기 로큰롤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로큰롤은 점점 인기를 백인 청소년에게 많은 인기를 끌게 되었는데 가수는 주로 흑인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척 베리와 리틀 리차드가 있었죠. 이에 음반 제작자들은 틈새 시장을 노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흑인의 음색을 낼 수 있는 백인 가수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숨겨진 리듬 앤 블루스 명곡을 백인이 커버를 하면 무조건 성공한다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죠. 따라서 백인들이 가수로 등장하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엘비스 프레슬리와 제리 리 루이스, 빌 헤일리, 버디 홀리 등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장르를 로커빌리 라고 하는데 이것은 로큰롤과 컨트리 송의 진화 형태인 힐빌리를 합친 말이기도 합니다. 이런 음악들은 미국 주류 사회를 뒤흔들었습니다. 그리고 영국으로 건너가 리버풀 등 항구 도시에서 유행을 하게 되었죠.

 

로큰롤은 재즈와 결합하여 스키플 사운드를 만들어냈는데 대표적으로 비틀즈가 있었습니다. 주류가 로큰롤을 하였다면 언더그라운드 비주류는 블루스와 재즈 음악을 했습니다. 기존의 블루스 음악은 미국에서 탄생했는데 처음에는 통기타와 하모니카 등으로 이뤄진 컨트리 블루스와 델타 블루스 등이 있습니다. 곧 미국이 발전을 하게 되고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 블루스에도 전기 악기가 접목되어 일렉트릭 블루스가 되었는데 특히 시카고에서 인기를 끌어 시카고 블루스라고 부르게 됩니다. 이런 음악은 로큰롤이 도래하기 이전 영국으로 전해져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백인)들은 브리티시 블루스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아티스트로는 알렉시스 코너와 존 메이올이 있구요.

 

로큰롤을 하지 않았던 영국 가수 중 클리프 리차드는 미국 공연을 시도했으나 실패를 하고 맙니다. 비틀즈가 그 다음 공격을 하여 성공을 했는데 이를 브리티시 인베이전이라고 합니다. 뒤이어 애니멀스, 데이브 클락 5, 무디 블루스 등이 진출을 하였죠. 이런 가수들은 모드 사조를 이끌었는데 이것은 프랑스의 누벨바그 사조에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이런 음악 이외에도 브리티시 블루스를 하던 사람들도 미국 진출을 하게 되었는데 대표적인 가수가 롤링스톤즈였습니다. 당시 미국 사회는 베트남 전쟁으로 혼란스러웠는데 기성 세대에 반발한 젊은이들이 비트 사조에 빠져들었고 곧 히피 무브먼트로 진화했습니다. 이들은 마약을 하였는데 음악적으로도 영향을 받아 사이키델릭 록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사이키델릭 록과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정치적인 언급을 하는 포크 송도 등장했습니다. 대표적으로 피트 시거와 밥 딜런, 조안 바에즈 등이 있었죠. 한편 이런 식으로 미국식 사이키델릭 록이 마냥 외쳐대는 밴드였다면 영국식 사이키델릭 록은 예술적, 음악적인 실험을 많이 하게 됩니다. 비틀즈의 영향을 받은 밥 딜런이 포크 송과 로큰롤 사운드를 절묘하게 결합시킨 포크 록을 만들어냈습니다. 영국식 사이키델릭 록의 발전으로 곧 프로그레시브 록이 등장하게 되었고 브리티시 블루스의 영향으로 블루스 록이 등장하게 됩니다. 블루스 록을 하던 밴드였던 크림은 하드 록을 만들어내게 되었고 지미 헨드릭스는 사이키델릭 사운드와 결합시켜 하드 록을 더욱 발전시키게 됩니다.

 

Rock의 세부 장르는 아래와 같습니다.

얼터너티브 록, 아나톨리안 록, 아레나 록, 아트 록, 비트 음악, 블루스 록, 브리티시 인베이전, 켄터베리 신, 첼로 록,  크리스천 록, 코미디 록, 컨트리 록, 프랫 록, 개러지 록, 글램 록, 하드 록, 하트랜드 록, 헤비 메탈, 인스투러멘탈 록, 잼 밴드, 크라우트 록, 팝 록, 파워 팝, 프로그레시브 록, 사이키델릭 록, 쟁글 팝, 포크 록, 펍 록 (영국, 호주), 펑크 록, 랩 록, 로커빌리, 로큰롤, 삼바 록, 소프트 록, 서던 록, 스토너 록, 서프 록, 고딕 록 · 전자 록 등

 

 대표적인 음악들


비틀즈


롤링스톤즈


Funk

 

l  Funk의 발생

Funk  소울, 리듬 앤 블루스, 재즈 등의 장르에 영향을 받아 1960년대 성립된 미국 흑인 댄스 음악의 장르입니다. funk 1950년대 미국 흑인들 사이에 "성 행위의 냄새", "지저분한 냄새" 등의 뜻으로 쓰이는 속어였습니다. 때로는 훵크로 표기하기도 합니다.

 

펑크 음악을 특징짓는 요소는 한 음을 기본으로 꿈틀거리며 싱코페이션이 많이 들어간 베이스, 강한 관악기와 강조되는 리듬 기타, 소울이 강한 보컬 등이 있습니다. 보컬은 멜로디보다 리듬을 강조할 때도 많습니다.

 

펑크를 대중에게 알린 아티스트는 대표적으로 제임스 브라운이 있습니다.

 

l  Funk의 역사

펑크 라는 단어는 1950년대 재즈 음반에 등장하였지만 음악 장르로 펑크가 확립된 것은 1960년대 말 제임스 브라운, 슬라이 앤드 패밀리 스톤, 아이슬리 브라더스, The Meters 등의 활약에 힘입었기 때문입니다.

 

펑키는 1970년대를 지나면서 발전된 음악 제작 기술(신디사이저, 드럼 컴퓨터)과 함께 더욱 상업화 및 대중화되어 디스코 음악으로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이 시대에 조지 클린턴은 팔리아먼트와 펑카델릭의 활동으로 펑크의 하위 장르인 P-펑크(P-Funk)를 만들어 냈다. 1990년대에는 하우스 음악으로 발전하였고, 많은 랩과 힙합 음악가들 또한 자신들의 음악이 펑크를 뿌리로 삼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 음악 장르가 성립할 때부터 이미 펑크와 재즈는 관계가 깊었습니다. 허비 행콕, 마일즈 데이비스, 마커스 밀러 등의 재즈 음악가들은 펑크에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스탠다드 재즈 곡들이 종종 펑크로 편곡되어 연주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레드 핫 칠리 페퍼스 같은 록 밴드도 펑크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하위 장르는 아래와 같습니다. 특이한 부분은 이 중 애시드 재즈도 포함된다는 점이지요.

G-펑크 (G-Funk), P-펑크 (P-Funk), 펑크 잼 (Funk Jam), 브릿 펑크 (Brit Funk), 펑크트로니카 (Funktronica), 재즈-펑크 (Jazz-Funk), 애시드 재즈 (Acid Jazz)

 

대표적인 음악가 및 곡

 

Commodores - "Brick House"

 

http://youtu.be/rrBx6mAWYPU

 

제임스 브라운 - "Sex Machine"

 

http://youtu.be/w2VIdwN0ywU

 

Parliament - "Give Up the Funk"


http://youtu.be/UypeE3zTwBs

 

Earth, Wind & Fire - "Jupiter"

 

http://youtu.be/x7J99LtTjds

 

The Ohio Players - "Fire"

 

http://youtu.be/Y47G-Wa4qfs

 

템프테이션즈 - "Shakey Ground"

 

http://youtu.be/vlqeg9nenHE

 

레이크사이드 - "Fantastic voyage"

 

http://youtu.be/-1YjmXSyHa8

 

 

 

 

R&B와 비슷하지만 또다른 음악 소울(Soul)

 

l  SOUL의 정의 및 기원

소울은 영혼 또는 정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혼이 들어간 음악' 그래서 '진한 음악'을 소울이라고 하구요. 농도가 짙고 그래서 날카로움을 음악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른 음악 장르 특히 R&B(알앤비)와 혼동될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음악을 소울이라고 하는지, 그리고 어떤 환경에서 발전해왔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흑인음악의 일축을 담당하고 있는 소울, R&B에서 파생 되었지만 사뭇 다른 배경을 가지고 태어난 음악입니다.

거의 모든 흑인음악의 탄생 배경이 그러하듯 소울 역시 억압받는 흑인들의 더 나은 내일과 백인 사회에 대한 한을 토하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Blues의 탄생배경에 기원합니다.)

 




l  Soul의 역사

미국에서 소울이란 말이 널리 퍼지게 된 때는 1960년대의 일입니다. 물론 이 말은 이전인 1950년대에 비밥 재즈 뮤지션들의 앨범에서 사용되었구요. 대표적인 예가 색소폰의 대가인 존 콜트레인의 1958년 앨범 제목이 소울과 자신의 이름을 합성한 소울트레인(Soul train)입니다.

 

그러나 소울을 의미 있게 만든 것은 1960년대 민권운동 정확히 말하자면 흑인 공민권 운동이었습니다. 이 무렵 흑인들은 그동안 당연시해오던 멸시와 푸대접의 굴레를 벗고 자신들의 권리회복에 나서게 되었습니다다.

 

'우리가 백인보다 못할게 뭐냐? 그런데 왜 우리는 그들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가?'

 

이런 의문은 곧바로 백인지배사회에 대한 불만과 분노로 이어졌으며 마침내 1960년대 중반이후 도시 흑인 빈민가에서는 대규모 폭동이 연쇄적으로 발생되었습니다. 당시 미국의 내전을 방불하게 했던 1967년 디트로이트 흑인 폭동의 경우 이 소요를 진압하기 위해 정부군만 16000명이 파견되었을 정도였죠.

 

이렇게 분노한 흑인, 강경해진 흑인들의 음악이 어떻게 변했는지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당연히 미친듯 몸을 흔들어대며 외쳐대고 질러댔을 것입니다다. 그것이 바로 소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빌보드차트는 흑인음악 용어를 R&B에서 소울로 바꾸기도 했습니다. 흑인들은 서로를 소울 브라더, 소울 시스터 라고 일컬었고 '소울 트레인'이라는 TV프로가 신설되기도 했습니다. 단맛의 포테이토 파이와 같은 소울푸드도 등장했습니다. 흑인에 관한 한 모든게 소울이라고 할 수 있는것이죠.

 

* 소울은 흑인 공민권운동에 의해 배양된 '흑인들의 자긍심'을 반영했으며 그 형식은 샤우트가 대변하듯 '분노의 폭발'을 취했습니다. 흑인들은 이 무렵 200년 가까이 이어져온 움츠린 자세를 버리고 어깨를 펴고 거만하게 팔자걸음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l  Soul의 발전

소울 음악의 시작은 시각장애를 이겨내고 최고의 경지에 이른 아티스트 "Ray Chales(레이 찰스)"에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가스펠에 블루스를 입혀 노래를 하곤 했는데 이러한 시도는 당시엔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이에대한 반응은 극과 극이었습니다. 신성모독 이라는 사람들과 예술적인 배합 이라는 사람들 이렇게 여러 주장이 있었죠.

 

“What i'd say”를 통하여 Ray Chales(레이 찰스)는 소울이라는 장르를 창조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해들 돕기 위해 조금 쉽게 설명하자면 소울이라는 장르는 애초에 흑인영가(가스펠)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이를 레이찰스로 인해 재조명 되었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이죠.

레이 찰스는 보수적인 백인 사회에 대한 일침, 그리고 사랑에 대한 서글프고 때론 열정적인 고백 등을 음악에 담았는데 블루스와 가스펠을 적절하게 재조합 하여 예술적으로 빚어낸 아티스트 이기도 합니다..

소울 음악은 펑크 음악, 그리고 트렌디한 가스펠에도 영향을 미쳤고 재즈처럼 지역마다 색다름 형태의 소울 음악의 형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에 다른 장르들과 교류가 활발하게 일어나 영향을 받던 타 흑인음악들에 비하여 소울음악은 꾸준하게 그 유전자를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이 외에 "Luther Vandross(루더 밴드로스)", "James Brown(제임스 브라운)", "Aretha Franklin(아레샤 프랭클린)", "Otis Redding(오티스 레딩)", "Al Green(알 그린)"등이 대표적인 소울음악가들이 등장하였습니다.

 

그 이후부터 Pop Soul(팝소울) Ulban Soul(어반소울)이 등장하였고 차츰 흑인들만의 깊은 의식적 세계와 그때까지 순수했던 뿌리 깊고 짙은 검은색의 유전자들이 흔들리고 여타 음악처럼 여러 갈래로 갈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전에도 시카고 계열 멤피스계열 등으로 분류되고 세션들의 악기 사용과 창법에 의해 분류되기도 하였으나 그 뿌리는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

 

이때부터 우리가 잘 아는 "Toni Braxton(토니 브랙스톤)", "Whitney Houston(휘트니 휴스턴)". "Michael Jackson(마이클 잭슨)"등이 등장하게 되는데 우리가 보통 R&B라 여기는 흑인음악들의 범주에 아주 착실하게 속하게 됩니다.

그리고 음악작업 방법의 다양화되는 시대에 맞추어 각종 시퀸싱 프로그램의 영향을 많이받고 차츰 세션과 기계적 사운드의 비율의 차이를 좁혀가게 되었습니다.

 

힙합과 긴밀한 교류를 하게 되었고 일반적인 팝과 손잡아 사실적으로 독자적인 소울의 색깔을 많이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달콤한 러브 트랙들의 홍수속에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게 되고 소울 음악의 저변을 폭 넓게 확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한번 진한 소울의 전성시대가 도래하게 되는데,

 

l  Neo Soul의 등장

이것은 다시금 소울다운 소울, 한마디로 60~70년대의 Old School Soul의 도래를 의미하는것으로 그 당시의 순수했던 정신과 음악적 스타일을 가지고, 그 위에 새로운 감각을 접목한 것으로 아주 큰 임팩트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것은 동시다발적인 것으로 요즘 '이것이 소울음악이다!!'라는 종류들이 생겨난것이죠.

 

그 선봉에는 "Maxwell(맥스웰)"이 있습니다. 1973년생인 그는 1996 Urban Hang Suite을 통하여 데뷔하는데, 끈적끈적하고 늘어지다가도 섬세하게 가성으로 고음을 처리하는 보컬링은 잔잔한 세션들과 어우러져 큰 쇼크로 다가왔습니다.

 

Neo Soul의 특징이라면 최대한 기계적 사운드를 줄이고 생음악 위주의 간결하고도 잔잔한 세션이 특징인데 이를 가장 잘 살린 아티스트는 "India Arie(인디아 아리에)"이다. 그녀의 음악을 "Acoustic Soul" 이라고도 하는데 그녀의 데뷔 앨범명 역시 Acoustic Soul입니다.

 

어쿠스틱 기타와 약한 스네어와 베이스 킥의 단순한 비트 위에 가벼운 듯 센스 넘치는 보컬을 하는 그녀는 네오 소울계의 진주라고 할수있습니다.

"D'Angelo"역시 네오소울의 일축을 담당하고 있는 아티스트 입니다. 그는 기존 소울의 희귀에 새로운 요소를 강하게 투입한 아티스트라 할 수 있습니다.

1955 Brown Sugar를 들고 나오자마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소울의 범주와 여타 장르의 경계선상에 서있는 음악들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많은 힙합 아티스트들과 교류를 하며 음악적 도움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Musiq Soulchild(뮤지크 소울차일드)", "John Legend(존 레전드)". "Eric Benet(에릭 베넷)". "Alicia Keys(알리샤 키스)"등 많은 네오소울 아티스트들이 소울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으며, 네오소울 조차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 장르들과 결합한 소울음악들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가장 소울다운 소울은 역시 탄생과 함께한 걸쭉하고 짙은 검은 색깔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울분과 한 그리고 삶과 사랑에 대하여 여과없이 때론 흐느끼면서 강렬하고 때론 늘어지게 단어 그대로 영혼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죠.

 

l  Soul의 종류 및 특징

Blue-Eyed Soul : 어디서 많이 들어보았죠? 바로 '한국의 Boyz II Men이라 불리는 브라운아이드 소울에서 블루만 바꾼겁니다. 60년대 중반에 백인들이 R&B, Soul음악을 선보이기 시작, 70년대까지 계속 히트를 이어갔지요. 음악은 당대 흑인 뮤지션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지만, 좀 더 가볍고 세련된 'POP'적인 느낌이 있습니다.(대표 뮤지션들 : the Righteous Brothers, the Rascals, the Box Tops, Hall & Oates, Robert Palmer, Average White Band...)

 

Brown-Eyed Soul : 이것도 Soul의 한 계열입니다. Latin Soul과 거의 비슷한 맥락이고, 타악기를 사용하기도 하는 독특한 스타일의 음악입니다. 특이한 형식의 음악인데 얼핏 들으면 삼바 음악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Southern Soul : 열정이 가득한 소울 계열 음악 장르입니다. 가스펠(gospel)적 요소, 촘촘한 리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8~90년대에 리바이벌 열풍이 일기도 했습니다

Memphis Soul : 위에서 접하신 Al Green이 속한 계열입니다. 다른 계열들에 비해 팍 튀는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치우침이 없기도 하구요. Al Green이 이 계열의 표본이라고 평가되니 관심 있으시면 일단 그의 앨범 'Call me'를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Chicago Soul : 초창기 소울음악입니다. 그래서 브라스(금관악기나 목관악기)편성을 보여주는 뮤지션이 많습니다. 음악 스타일은 자유로움이 있습니다. 재즈같은오래되고 큰 히트가 변변찮은 탓에 우리나라에서 접하기 쉬운 음악은 아니기도 합니다.

Ulban : 부드러움, 댄서너블하고 힙합적인 요소와 대중적인 가스펠 편성입니다. 한 마디로 우리가 세련된 음악이라고 일컫는 R&B 음악을 통틀어 부르는 계열이기도 하고, 소울에만 국한되지 않고 R&B Hip-hop적으로 크로스오버되는 음악을 칭합니다. 대표적인 뮤지션들을 보면(Babyface, Anita Baker, Boyz II Men, Toni Braxton, Mariah Carey, Lauryn Hill, Whitney Houston, Janet Jackson, Michael Jackson, R. Kelly, New Edition, Prince, Smokey Robinson, Sade, TLC, Stevie Wonder...)

 

Neo Soul : 앞에서 설명한 6~70년대 소울을 'Old School Soul'이라 칭합니다. 순수했던 소울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탄생한 계열이 바로 Neo Soul입니다. 물론 21세기에 맞게 R&B Hip-hop적인 요소를 적절하면서도 입맛에 잘 맞게 풍부한 양념을 두른 매력적인 음악으로 소울을 재창조한 것이죠. 대표 뮤지션은 아래와 같습니다.

(India.Arie, Erykah Badu, D'Angelo, Macy Gray, Lauryn Hill, Alicia Keys, Musiq (Soulchild), Rahsaan Patterson, Jill Scott, Maxwell...)

 

이 밖에도 Country Soul, Smooth Soul, Northern Soul, Pop Soul, Retro Soul, Psychedelic Soul, Philly Soul, Deep Soul 등의 종류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뮤지션

Ray Charles - Hit the road Jack!

 

http://youtu.be/Q8Tiz6INF7I

 

I've got a woman - Ray Charles live at Olympia

 

http://youtu.be/lsC4cH-v3ns

 

India.Arie - Video

 

http://youtu.be/Mq86e4Fhja0

 

Musiq - Love

 

http://youtu.be/OIKC2ggCed4

 

"my prayer" Eric Benet

 

http://youtu.be/HYQrYMz0VZU

 

Alicia Keys Live

 

http://youtu.be/jhPAK8HjcPI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알앤비 R&B (RHYTHM & BLUSE)


l  알앤비 R&B (RHYTHM & BLUSE) 의 음악적 특징


대부분의 미국 흑인 음악과 마찬가지로 리듬앤 블루스의 다양한 양식들은 재즈 리듬을 바탕으로 음의 굴절, 특히 당김음의 처리와 반음 내려 연주하는 블루스 화음이 뒤섞여 유럽 음악의 영향을 한데 섞은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리듬 앤 블루스의 뿌리는 미국 남부의 시골에서 유행하던 블루스 음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 흑인들의 음악 양식인 블루스가 발전하여 재즈와 리듬 앤 블루스 갈라진 것이죠. 재즈가 유럽의 도시에서 유행하던 백인 음악과 만나 재즈로 발전했다면 리듬 앤 블루스는 유럽의 시골에서 유행하던 음악과 만나 정착된 장르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흑인들이 백인으로부터 가혹한 중노동의 고통에 시달리면서 불렀던 슬픔의 노래 였기에 전체적으로 슬프고도 애절한 리듬과, 멜로디, 가사를 담고 있습니다. 블루스가 발전하여 흑인 교회의 가스펠송으로 분화됐기에 가스펠송과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초창기 리듬 앤 블루스에 속하는 여러 양식은 3가지 주된 형식으로 구별됩니다. 그중에서 가장 최초의 형태는 레이스(Race)1940년대 후반까지는 `레이스 뮤직'이라고 불리었습니다. 1950년대부터는 백인들에게 까지도 충분한 인기를 모았고, 흑인의 지위도 어느 정도 향상 되었으므로 멸시의 느낌이 강한 `레이스뮤직' 이라는 용어를 `리듬 앤 블루스'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는 `점프 악단'의 양식이었고 제 2차 세계대전에 나타나 가장 먼저 나타나 가장 먼저 사라졌습니다.

 

점프 악단의 특성은 강한 리듬과 흥분된 연주, 샤우트 창법으로 요약됩니다. 이들 악단의 음악은 `두왑시대' (미국에서 1940년과 1950년대 연주 도중에 악기를 입으로 대신하여 내던 소리를 `두왑(Doo-Wop)' 이라 일컬읍니다. 이렇게 목소리로 반주하던 그룹을 `두왑그룹' 이라 하는데 이 부류의 그룹들은 대개가 흑인 빈민들 거주 지역인 뉴욕의 할렘등에서 생겨났으며 열악하게 반주를 담당할 악기도 없이 연주하고 노래 불렀다고합니다.) 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점프악단들은 대부분 1950년대 초쯤 사라졌습니다. 또 하나의 양식은 1940년말 시카고 남부의 바나클럽을 중심으로 태동한 시카고 블루스 무디 워터스, 서니 보이 윌리암슨, 훌린 울프로 대변되는 연주자 그룹들이 소규모로 편성된 악기 - 전자 기타, 전자 오르간, 하모니카, 드럼 - 로 소란 스럽게 연주하는 형태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스펠 양식은 보컬을 중심으로 편성된 연주 형태입니다. 리드싱어가 위 음역을 맡고 코러스가 밑을 바쳐주는 형태로 밑집 화음을 사용하여 거의 가라앉은 분위기의 느린 템포가 뒤따르는 형식입니다.

 

l   모타운의 태동, 상업적 음악으로의 전진

 


비상업적인 흑인 음악으로 이어져 오던 리듬 앤 블루스가 상업적인 흥행 음악의 장으로 자리 를 잡은것은 1960년대 부터였습니다. 뉴욕의 애틀란틱 사운드와 디트로이트의 모타운, 이들 레코드 회사들은 흑인 음악만을 본격적으로 기업화하여 스타를 만들었던 레이블이었습니다.

 

애틀란틱을 대표하는 가수는 맹인 가수 레이찰스. 그는 59 `What i'd Say' 를 히트시켜서 백인들에게 인정받은 최초의 흑인 가수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샘 쿡과 재키 윌슨이 가스펠과 리듬 앤 블루스의 접점에서 히트곡을 양산해 냈습니다.

 

또 하나의 레이블인 모타운은 미국 팝 음악의 역사를 바꿔 놓은 기념비적인 레코드 회사였습니다. 흑인 음악의 대부 베리 고디 주니어는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던 디트로이트의 평범한 흑인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탁월한 음악적 감각과 빠른 두뇌 회전, 사업적 투지를 갖추고 모타운 신화를 준비했었고 스모키 로빈슨, 브라이언 홀랜드, 라몬드 도지에, 에디 홀랜드 등 작곡가를 한데 묶어 이른바 `H.D.H' 팀을 결성, 팝 음악계를 뒤흔드는 히트곡을 양산해내기 시작했습니다. 모타운 최고의 스타는 빈민가 출신의 여가수 다이아나 로즈 가이끄는 슈프림스였습니다. 이들은 `Baby Love', Back in My Arms Again' 등을 히트시키면서 60년대 최고의 여성 그룹으로 군림했습니다.

 

이에 대적한 남성그룹은 모타운 출신의 템테이션스. 이들은 5명의 흑인 멤버가 보여 주는 완벽한 하모니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마빈 게이와 스티비 원도도 모타운이 나은 천재 가수들입니다. 마빈 게이는 모타운에서 가장 돋보였던 천재 가수로 다른 가수들에게 찾아보기 힘든 정교함과 깊이를 갖춘 가수였습니다. 12살때 데뷔앨범을 냈던 그는 아직까지 건재함을 과시 하면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흑인 가수였고, 60년대 `For Once in my Life', `Yester Me,Yester You, Yesterday'등을 히트 시켰다.

 

모타운의 마지막 스타는 잭슨 파이브 였습니다. 68년 마이클 잭슨과 자넷 잭슨이 포함된 잭슨가의 다섯 형제들이 첫 싱글 `I Want You Back' 으로 단숨에 빌보드 정상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모타운은 베리고디 주니어의 독단적인 운영으로 많은 작곡가들이 떠나는 바람에 그 신화에 종지부를 찍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모타운은 흑인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레이블로 남았고 미국 팝 음악의 또 다른 변주인 로큰롤을 탄생시키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 역시 흑인 음악의 영향 아래 성장하여 최고의 스타로 성장할 수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 이었습니다. 60년대 리듬 앤 블루스의 중요한 양상 가운데 하나는 흑인 소울의 등장이었습니다.

 

흑인음악의 3대 레이블중 하나인 스탁스가 주도한 이 음악은 흑인의 영혼을 담으려는 음악으로 디름 앤 블루스와 달리 좀 더 흑인적이고 여운이 오래 남는 음악이었습니다. 윌슨 피켓, 제임스 브라운, 오티스 레딩 등이 본격적인 소울 음악으로 시장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67년 히트곡 `I Never Loved A Man' 을 히트 시키면서 최고의 소울 가수로 등장한 아레샤 프랭클린은 불후의 명곡 `Respect' 를 남기면서 소울의 여왕에 등극하기도 했습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열정과 흑인들의 일상을 담아낸 노래말, 강한 리듬과 비트로 이뤄진 그녀의 노래는 소울의 모든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대선배격인 레이 찰스는 그녀를 가리켜 "내가 아는 가장 위대한 가수" 라고 칭송 했고 여성 백인 가수를 대표하던 제니스 조플린 역시 "최고의 여성" 이라고 그녀를 칭하기도 했습니다.

 

l   70년대 이후, 리듬 앤 블루스를 바탕에 깔고 등장하는 아티스트들

 


70년대 들어 와서는 잭슨 파이브의 인기가 계속 되면서 코모도스, 라이오넬 리치, 퀸시 존스등 대형 가수와 뮤지션들이 줄줄이 활동을 펼쳤습니다. 흑인 6인조 그룹인 코모도스는 아직도 스테디 송으로 불리고 있는 `Three Times A Lady', `Still' 등을 히트시키며 흑인 음악의 계보를 이어갔습니다. 레이 찰스로부터 음악적 영감을 이어 받은 퀸시 존스 역시 70년대 흑인 음악을 주도해 온 아티스트 였습니다.

 

그는 뛰어난 작곡과 편곡 실력으로 기라성 같은 가수들의 음반을 히트 시키면서 단숨에 스타 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앤디 윌리암스, 사라 본, 프랭크 시나트라가 그의 손에 의 해 만들어졌으며, 가수로서도 만만치 않은 실력을 발휘했습니다. `You've Got It Bad, Baby' 는 재즈와 소울, 팝차트를 휩쓸면서 최고의 인기곡으로 떠올랐습니다.

 

그가 세운 공적 중에 가장 큰 공적은 마이클 잭슨의 앨범을 제작하여 84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마이클 잭슨으로 하여금 8개 부분을 석권하게 만들었습니다. 잭슨 5의 귀여운 꼬마에서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는 마이클 잭슨의 성공 신화는 음악 시장의 흐름을 바꿔 놓은 사건이었습니다.

 

80년대 흑인 음악을 얘기하면서 빼 놓을 수 없는 아티스트 중 하나인 프린스를 얘기해볼까요?  그의 음악은 관능적이고 대담 하면서 성적인 모험과 환상을 불러 일으킵니다. 80년대 초반 연속되는 히트로 미국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떠오른 그는 흑인 음악과 백인 음악의 결합을 추진한 흑인 가수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로큰롤 또는 섹스 로큰롤 로 정의되는 그의 음악은 흑인음악의 흐름을 바꾸는 계기로 작용되었고, `Up Town' `1999' 등 히트곡은 그의 음악성에 대한 경외심까지 느껴지는 곡이기도 합니다.

 

80년대 중반 휘트니 휴스턴의 등장 역시 빼 놓을 수 없는 사건. 90년대 까지 이어지는 그녀의 인기는 리듬 앤 블루스 계열의 수많은 여성 가수들의 전성기를 연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놀라운 가창력으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어 당대를 대표하는 디바로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또 자넷 잭슨과 머라이어 캐리, 토니 블랙스턴으로 이어지는 현대 팝 디바 계보의 맨 처음을 장식했습니다.

 

l  이후의 R&B


90년대 들어 리듬 앤 블루스는 속칭 R&B로 불리우며 보다 다양한 변주로 이어졌습니다. 자넷 잭슨과 토니 블랙스턴에서 머라이어 캐리 등에 이르기 까지 R&B 여가수들의 등장은 빼 놓을 수 없는 사건입니다. 또 흑인 여성그룹 TLC의 약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들의 배후에는 베이비 페이스 라는 탁월한 아티스트가 숨어 있었습니다. 그는 탁월한 프로듀서 감각으로 흑인 음악의 복고 바람과 상업적 성공을 주도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90년대 흑인 음악의 주류는 힙합인데, 50~60년대를 주도하던 흑인 음악의 흥겨움을 이어받은 소위 두왑 시대로 대표되는 그 시대의 음악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힙합은 정통 리듬 앤 블루스 적을 두고 있으면서도 탈장르를 부추기는 현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때 상당한 인기를 얻었던 흑인그룹 퓨지스의 경우는 복고의 경향을 잘 나타내 주는 대표적인 케이스 특히 정통 리듬앤 블루스 리듬을 계승한 보이즈 투 맨 등 여러가지 아티스트 들이 있습니다.

마이클 볼턴과 조지 마이클처럼 백인이면서도 흑인 음악을 구사하는 아티스트들도 있습니다. 소위 블루 아이드 소울 (Blue-Eyed Soul)로 통칭되는 이들의 음악도 리듬앤 블루스의 중요한 변화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뮤지션

 

Supremes - Unchained Melody

 

http://youtu.be/HrxDb8s_yqE

 

Marvin Gaye - What's Going On (Greatest Hits - Live In Amsterdam)

 

http://youtu.be/jzPA-FrVu3I

 

Stevie Wonder - Isn't She Lovely

 

http://youtu.be/b2WzocbSd2w

 

Who's Lovin You - Jackson 5

 

http://youtu.be/J2xc8xZ0tV0

 

Michael Jackson - Beat It

 

http://youtu.be/Ym0hZG-zNOk


퓨전 재즈 : 기존 재즈의 경계를 지워버린 '혼합' 재즈

 

퓨전 재즈는 록, 블루스 심지어 클래식까지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광범위한 음악 형식을 조화롭게 쓰는 것을 일컬읍니다. 1969년 트럼펫 연주자인 마일스 데이비스가 정통 재즈에 록을 접목하여 만든 재즈록에 기원을 둔 퓨전 재즈는 일렉트릭기타, 신디사이저 등 전자 음향의 도입에 이어 최근에는 라틴, 인도음악 등 각국의 민속음악을 접목하는 추세로 발전해 왔습니다.

 

재즈의 역사는 사조들의 변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한 사조는 그 내부에서 끊임없는 새로움을 추구하다가 그 추진력이 소진될 무렵 다시 다른 사조들이 등장하면서 그 지배적 위치를 넘겨주곤 했습니다. 따라서 많은 내부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 사조는 독자적인 불변의 정체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지배 사조의 개념은 프리 재즈부터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스윙, 비밥, , 하드 밥으로 이어지는 사조의 흐름이 모두 연주의 방법론에 기인하고 있는 반면, 프리 재즈부터는 기존의 형식을 벗어난다는 커다란 대전제만 있다는 사실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조가 바뀔 때마다 존재해 온 '새로운 방식으로 연주하자'라는 생각은 프리 재즈에도 이어졌지만, '이렇게 연주하자' 라는 지배적 방법론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연주자들은 새로운 형식의 연주를 독자적인 사고와 방법으로 현실화시킬 뿐이었습니다.

 

퓨전 재즈 역시 연주방법론보다는 재즈의 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사고가 우선시 되는 음악입니다. 이처럼 연주 방식 위주가 아닌 개념 중심의 사조는 모든 혁신적 변화를 사조 안에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클래식 느낌의 즉흥 연주가 없는 연주와 고도의 즉흥으로만 꾸며진 연주가 서로 상이한 면이 많으면서도 모두 프리 재즈로 분류되는 것이 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퓨전 재즈에서도 마찬가지라서, 초기의 록 성향과 집단 즉흥 연주가 강하게 드러났던 연주와, R&B 성향으로 즉흥 연주가 거의 없고 반주마저 프로그래밍하는 연주까지, 모두 퓨전 재즈의 부류에 포함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렇다면 퓨전 재즈에서 재즈를 구성하는 개념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바로 'Fusion'이었습니다. , 여러 상이한 음악 스타일들을 결합하여 새로운 재즈를 만들어내는 것이 퓨전 재즈의 기본 원칙인 것입니다.

 

대표적인 뮤지션

 

Birds of Fire - Mahavishnu Orchestra

 

http://youtu.be/gv_bkS5VVaA

 

Mahavishnu Orchestra: One Word

 

http://youtu.be/MtSIEkPqVgk


Return to Forever - The Romantic Warrior 1976

 

http://youtu.be/lObVilGPjHc

 

Weather Report - Birdland

 

http://youtu.be/pqashW66D7o

 

 


Cool Jazz(쿨재즈)

West Coast Jazz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1940년 후반 미국에 나타난 재즈의 양식 중 하나입니다.

 

'Cool'이라는 말은 마일스 데이비스나 모던 재즈 쿼르텟, 게리 멀리간, 레니 트리스태노 등 그들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은근하고 절제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신문 음악평론가들이 이름 붙인 것에서 부터 비롯되었습니다. 부드럽고 은은한 음색에 비브라토는 느리거나 아예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드럼은 밥이나 하드 밥 양식 등 당시의 다른 재즈 양식들에 비해 더 부드러웠고 다른 악기들 과의 상호작용은 더 적었으며 선율을 담당하는 악기들은 대위법적인 집단 즉흥연주를 주고 받는 것에 새롭게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이 양식 안에도 감정의 범위나 복잡성의 정도, 악기 편성 등에 있어서는 상당한 다양성이 존재했습니다. ''이라는 말은 로스앤젤레스를 기점으로 한 색소폰 연주자 데이브 펠의 감성적이고 가벼운 음악과 뉴욕을 기점으로 한 피아니스트 레니 트리스태노의 복잡하고 강렬한 음악을 지칭하기도 합니다.

 


쿨 재즈의 녹음 활동과 악보 출판의 경우 백인 재즈 음악인들의 집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여기에는 게리 멀리간과 데이브 부르벡, 쇼티 로저스 등이 참여하였습니다. 이 연주자들은 1950년대초와 중엽에 캘리포니아를 기점으로 해서 활동했으며, 웨스트 코스트 재즈라는 명칭도 여기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연주자들 대부분은 이곳 출생이 아니었고 또한 이곳에서는 아주 잠시 동안만 활동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색소폰 연주자 찰리 파커나 트럼펫 연주자 디지 길레스피의 '' 모던 재즈 양식의 계승자들과 마찬가지로, 쿨 재즈 양식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던 테너 색소폰 연주자 레스터 영이나 쿨 재즈의 개척자 마일스 데이비스의 후계자들도 특정 지역에 집중적으로 모여 활동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어 백인 색소폰 연주자인 게리 멀리건과 아트 페퍼가 이른바 웨스트 코스트 양식이라는 이름으로 로스앤젤레스에서 이름을 떨치는 동안 텍스터 고든이나 워델 그레이 같은 유명한 흑인 색소폰 연주자들(모두 찰리 파커의 영향을 받은 핫 재즈 양식의 계승자들입니다)도 같은 도시에서 연주 활동을 하고 있었으며, 그 당시에 보스턴에서는 색소폰 연주자인 존 파포르타와 트럼펫 연주자인 허브 포메로이가 쿨 재즈 양식으로 연주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서부 연안(West Coast)에서 당시 연주된 모든 양식을 쿨 재즈 양식이라 할 수도 없고, 이 양식이 서부연안에서만 국한된 것이라고도 할 수는 없습니다.

 

 

 

Hard Bop Jazz(하드밥 재즈)

 

1950년 이후 유행했던 재즈 양식입니다하드밥재즈의 음악적 특징은

 


음악형식면에서 클래식을 접합시키는 방법과 감각적 측면은 비슷하지만 음악적 표현이 이전의 비밥(Bebop)을 이어받아 좀 거칠어진 형태를 가진 재즈입니다. 비밥처럼 재즈에 있어서 흑인적인 요소를 더욱 강조함으로써 음향이 거칠고 폭발적이며, 타악기를 강조하고 표현력이 강하며 단순 감각적이고 강렬한 에너지 감을 연주자의 능력에 따라 표출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블루스나 체념하는 형태의 재즈가 아닌 "펑크(Funk)"라고 부르기도 하는 폭발하는 연주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곡

 

쿨재즈


 

하드밥재즈





밥, 비밥(Bop, Bebop)

 

1.    비밥 재즈의 발생

 

""또는 "비밥"이란 단어의 어원은 밥(Bop) 재즈를 노래 부를 때 사람들이 "비비비비 밥밥밥" 또는 "비밥 비밥"하는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라라라"와 같이 뜻없이 곡조에 맞추어 부르는 음절이었던 것이죠. 비밥의 탄생은 흑인 음악가들이 스윙 재즈에서 재즈 특유의 특징이 엷어진 것에 불만, 새로운 스타일의 재즈를 구축한 것으로서 종래의 그 어느 재즈보다도 아프리카적인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밥 재즈 시대를 연 음악가로는 찰리 파커(Charlie Parker, 색소폰)를 대표자로 들 수 있으며, 밥 재즈는 초기부터 매우 특이하고 독창적인 성격이 강하여 대중의 호응을 받지 못했습니다. 즉 음색이 대단히 강하고 자극적으며, 화음에 있어서도 감화음 이라든가 7, 9, 11도 화음을 사용하였고, 템포는 바른 편이며, 율동감이 별로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와 같이 난해하고 충격적인 비밥 재즈는 예술성이 강하여 예술 음악으로 인정받게 되었으며, 비밥 이전의 재즈를 비밥에 대칭된다는 의미에서 전통 재즈 혹은 고전 재즈(Traditional Jazz, Classical Jazz)라고 부릅니다. 

 

비밥 재즈는 예술성은 강하지만 대중에게는 물론이고 재즈 음악가들 사이에도 외면하는 이가 많았습니다. 따라서 방송 출연은 하기도 어려웠고, 레코드 취입은 뒤늦게 1945년에야 이루어졌습니다. 비밥이 인기가 없었으므로, 한편으로 전통 재즈인 뉴 올리언즈 재즈를 비롯하여 딕실랜드 재즈 등이 리바이벌 붐을 일으켰으며, 블루스, 스윙에서 파생된 부기우기 등이 그 당시에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비밥 재즈가 예술 재즈로 등장하게 됨으로써 1945년부터는 재즈의 세계도 민요[지방 블루스<land-blues>, 도시 블루스<city-blues>, 대도시의 흑인을 중심으로 하는 리듬과 블루스<rhythm and=" Blues=">, 뉴올리언즈 재즈] [춤과 오락 음악 (딕실랜드<dixieland>, 스윙<swing>), 예술음악(비밥<bebop>)]등으로 분류되게 되었고 각각 그 특징을 살려 계속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2.     비밥 재즈의 음악적 특징

 

비밥 재즈는 전술한 바와 같이 매우 혁신적인 성격을 보여줍니다. 우선 즉흥성이 매우 강하므로 솔로들이 몇명만 모여 만들어진 캄보 밴드(Combo Band)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색소폰, 트럼펫, 피아노, 콘트라베이스, 드럼) 비밥 재즈에서 특이한 점은 피아노가 리듬악기로 등장하여 화음을 받쳐주는 역할을 하고, 드럼은 박자를 짚어주는 리듬악기로서가 아니고 독자적인 리듬 형태를 보유하여 기교적인 면을 강조함으로써 멜로디 악기와 동등한 관계를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거친 음색, 현대적인 화음구성과 함께 8분음표 또는 16분음표로 계속되는 빠른 리듬은 광포하며 굉장히 전율적인 것이 특징입니다.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찰리 파커(Charlie Parker, 앨토 색소폰), 존 디지 질레스피(John "Dizzy" Gillespie, 트럼펫)와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 트럼펫), 텔로니어스 몽크(Thelonius Monk, 피아노)와 버드 포웰(Bud Powell,피아노), 마일드 잭슨(Milt Jackson, 비브라폰), 오스카 페티포드(Oscar Pettiford, 콘드라베이스)와 찰리 밍구스(Charlie Mingus, 콘트라베이스), 찰리 크리스챤(Charlie Christian, 기타), 케니 클락(Kenny Clarke, 드럼)과 맥스 로치(Max Roach, 드럼)등이며, 시기는 1940년에서 1955년까지로 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뮤지션

 

Charlie Parker - All the things you are

 

http://youtu.be/UTORd2Y_X6U

 

Jazz Classics: Dizzy Gillespie - A Night In Tunisia

 

http://youtu.be/BQYXn1DP38s

 

Blue in Green by. Miles Davis

 

http://youtu.be/PoPL7BExSQU

 

Max Roach at his best

 

http://youtu.be/cS-xiX64HGQ

 

 


재즈를 이야기할 때 꼭 들어가는 이 말 스윙. 빅밴드와 같은 재즈음악의 대부분은 이 스윙이 들어가 있습니다. 음악과 춤 이 두가지가 꼭 들어가는 신나는 재즈음악 스윙. 이번편에는 스윙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1.    스윙(Swing)이란

스윙(Swing) : 흔들리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스윙의 특징은 율동감입니다.

 

이러한 율동감을 위해서 이전까지의 2박자 재즈가 아닌 4박자 연주가 주류를 이루게 되는데, 스윙의 4박자는 1,2,3,4를 그냥 나열하는식 이 아닌 “~~~~” 하면서 'and'에 악센트를 줌으로써 기존 연주에 강한 율동감을 유도하는 형식이었다고 합니다.

 

EX)1-2 and 3-4 and

 

대부분 스윙 스타일 그룹들은 적어도 10명의 멤버로 구성 되었으며 적어도 3.4개의 섹소폰, 2,3개의 트럼펫, 2,3개의 트럼본, 피아노, 기타, 베이스, 드럼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폭발적인 업비트의 리드미컬한 특성을 갖는 음악으로 노래에 따라서 우아하게, 또는 그루브하고 펑키하게 표현하는데, 풍부하고 호소력있는 빅밴드 스윙음악은 청자의 감상이나 흥미정도에 따라서 표면적으로 고양 시킬수도 있고, 또 심지어 내면을 움직이게도 합니다.

 

스윙이 성장하게 된 데에는 미국 경제의 호전과 더불어 대중매체의 발달 역시 한 몫 했다는 점이 간과해선 안 될 중요 요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해서 대량으로 보급된 라디오와 영화 등은 그동안 클럽과 연주회로만 겨우 접할 수 있었던 재즈 뮤지션들을 일반화 했는데, 바로 이때 바람과 같이 나타난 사람이 베니 굿멘(Benny Goodman)입니다. 파산 직전이었고, 무명이며, 백인(당시 거의 모든 유명 재즈 연주자는 흑인)이었던 클라리넷 연주자 베니 굿맨'Let's Dance' 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그의 빅밴드와 함께 연주했는데 이 음악이 엄청난 히트를 칩니다. 그 이후의 미국 음악은 거의 모두가 이런 신나는 음악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스윙 음악은 주로 댄스홀에서의 반주로 주로 쓰였습니다. 처음에 스윙에 관심이 없던 다른 재즈 거장들도 하나 둘씩 스윙의 물결에 동참하게 되고, 결국은 모든 재즈가 스윙으로 통하게 됩니다.

 

물론 스윙이란 음악 장르가 갑자기 튀어나온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많은 밴드들이 연주했던 거지만 본격적으로 이때부터 대중들에게 어필하게 된것이죠. 이때의 거장으로는 베니 굿맨, 토미도시(Tommy Dorsey, tb),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p),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 p), 글렌 밀러)Glen Miller, tb)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빅밴드를 이끌며 그야말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고 특히 이중에서 듀크와 카운트는 음악성과 대중성에서도 최고의 인기빅밴드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 두 사람은 재즈 역사상 최고의 인물들 중 하나로 일컬어 집니다. 그리고 유명한 빌리 할리데이 라는 가수가 이시기에 데뷔해서 듀크나 베니, 카운트의 빅밴드와 함께 노래했다고 합니다. 이때가 빌리 할리데이의 전성기였다고 합니다.

 

이 시대의 연주는 주로 커다란 클럽에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빅밴드가 연주를 하고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무희들은 춤을 추고, 관객들은 술을 마시는 사교클럽 과 같은 분위기지요. 이때의 클럽은 대부분 연주자와 종업원들은 흑인이고 손님들은 모두 백인이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 인종차별이 아직 남아있었다는 것을 이런 배경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백인이 튀기 힘든 재즈계에서 베니 굿맨은 특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스윙 붐을 일으켰기 때문에 '스윙의 왕' 이라고도 불렸었고 재즈 뿐만아니라 클래식에도 조예가 깊어 바르톡, 스트라빈스키 등이 그를 위해 곡을 만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스윙 시대에 최고의 빅밴드를 꼽으라면 모두가 듀크 엘링턴을 꼽습니다. 최고의 음악성과 대중성으로 30년대 재즈계에서 최고의 명인이라고 불린 인물입니다. 이후에도 듀크 엘링턴만금 재즈 역사에 영향을 끼친 사람이 몇 안되었습니다. 듀크 엘링턴은 50여년간 활동하면서 무려 1000장이 넘는 정규 레코드를 발매했다고 하고, 3000곡이 넘는 작곡을 했다고 합니다. 또한 많은 인기 연주자가 듀크 엘링턴의 밴드 출신인 것으로 유명합니다.

 

 

빅밴드 그리고 스윙재즈는 많은 사람들이 연주를 하기 때문에 편곡이 엄청나게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보통 곡은 테마 - 솔로 - 테마의 구성으로 이루어집니다. 한곡에는 미리 정해진 솔로 연주자가 있고 나머지 멤버들은 테마 부분에서는 집단적인 연주를, 솔로부분에선 솔리스트를 돋보이게 해주는 배경 연주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편곡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죠.

 

 

2.    스윙감(Swing Feel) 이란?



흔히 재즈뮤지션들(특히 보컬리스트)을 언급할 때 "그 사람은 스윙감이 없어" 혹은 "그의 연주엔 스윙감이 가득해" 같은 표현을 종종 접하곤 하는데, 스윙 외에 재즈의 다른 장르들은 이런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쿨감(Cool Feel) 이라거나 밥감(Bop Feel) 이라는 표현은 쓰질않죠. 이런 스윙감이란 용어가 재즈필과 거의 같은 뜻으로 통용되는 데에는 여러 견해가 있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설은 스윙의 대중적 인기, 그리고 전세계, 다른 장르의 음악에 미친 영향에 따른 이유가 있기도 합니다


즉 블루스형식의 곡 구조와 싱코페이션으로 대변되는 전통적인 재즈의 틀을 고수하며 세계의 일반대중에게 어필한 재즈의 하위 장르는 스윙이 최초이며 이로 인해 재즈 전반에 대한 대표성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대표 뮤지션

 

SING, SING, SING" BY BENNY GOODMAN

 

http://youtu.be/r2S1I_ien6A

 

Duke Ellington - It don't mean a thing (1943)

 

http://youtu.be/qDQpZT3GhDg

 

COUNT BASIE Swingin' the Blues, 1941 HOT big band swing jazz

 

http://youtu.be/TYLbrZAko7E

 

 

 


시카고 재즈(Chicago-Jazz)


1.     시카고 재즈의 발생 그리고 발전


 


1917,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뉴 올리언즈가 중요 해군기지로 지정되어 스토리빌의 업소들이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곳에서 일하던 많은 음악가들이 해고를 당하여 이들 중에는 미시시피강을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 세인트루이스(St. Louis), 캔자스(Kansas), 시카고(Chicago) 등으로 이주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 도시들 중 시카고는 특히 1920년대부터 재즈가 활발히 꽃피기 시작한 도시로서, 루이 암스트롱, 죠 킹 올리버, 키드 오리, 젤리 롤 모튼 같은 이들이 뉴 올리언즈에서 시카고로 이주하여 활동한 대표적인 음악가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시카고에서 새로운 연주법을 구사하여 "시카고-뉴 올리언즈 재즈" 스타일을 구축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루이 암스트롱은 시카고에서 20년대에 "핫 파이브(Hot Five)" "핫 세븐(Hot Seven)"밴드를 조직하여 뉴 올리안즈 스타일로 연주하다가, 30년대에는 그 당시 시카고의 유행대로 자신의 트럼펫 솔로 연주와 노래가 큰 역할을 맡고 그의 밴드는 뒤에서 반주만 하는 스타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스타" "쇼맨"으로서의 위치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40년대에는 "올 스타즈(all Stars)"악단을 조직하여 다시 뉴 올리안즈 스타일로 되돌아 가기도 했습니다


루이 암스트롱과 버금가는 유명한 음악가는 피아니스트 젤리 롤 모튼 이었습니다. 그는 크레올 출신으로 음악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으므로, 테마를 작곡하고 또한 이를 편곡하여 그의 밴드를 연습시켰습니다. 그의 악단의 특징은 즉흥연주의 폭이 훨씬 적었던 탓에 당시 재즈 동료들에게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시카고에서는 재즈의 세계에 백인이 진지하게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 또한 획기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백인 고교생과 대학생들 사이에 재즈는 신선한 음악으로 받아들여져 널리 퍼지기 시작하였으며, 이들 가운데 "어스틴 하이스쿨 갱(Austin High School Gang)"과 같은 모교 이름을 본딴 유명한 밴드와 빅스 바이더벡(Bix Beiderbecke, 트럼펫)같은 훌륭한 연주가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과거의 딕실랜드 재즈와는 달리 진정한 재즈 세계를 탐구하여 그 당시 백인의 취향인 "스위트 뮤직 (Sweet Music)"을 침투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들의 음악적 특징은 테마 작곡과 편곡을 역시 오선지에 철저하게 적는 방향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흑인악단보다 즉흥연주가 적으며, 솔리스트의 활약이 전체적인 밴드연주보다 앞서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음악은 흑인의 연주보다 약간 가라앉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2.     시카고 재즈의 음악적 특징

 

시카고 재즈의 전성기는 대략 1925년에서 1930년까지로 추정되며, 뉴 올리언즈 출신의 흑인 음악가들은 시카고에서 좀더 고상하고 세련되고 노련하게 스타일을 바꾸어 나갔습니다. 이들은 또한 뉴올리언즈 재즈 음반 제작을 이곳에서 실행했습니다(1923-1928). 시카고 재즈는 이러한 유래로 말미암아 뉴 올리언즈 스타일과 흡사한 점이 많지만 그 특징을 끄집어 내자면 아래와 같은 점이 있습니다.

 

(1) 합주에 대응하는 솔로의 즉흥연주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집단 즉흥연주는 쇠퇴되었다.

(2) 멜로디 악기들이 제각기 횡적으로 즉흥연주를 하기보다는 화성적으로 맞추게 되었다.

(3) 벤죠와 튜바보다 기타와 콘트라베이스를 즐겨 연주하였다.

(4) 악센트를 제2, 4박에 두어 스윙감을 더했다.(뉴 올리안즈 시대의 2박자 재즈에서 4박자 재즈로 옮겨와 약동감이 더해지는데 이를 '스윙'이라고 한다. 4박자 재즈의 최초의 공로자는 루이 암스트롱이다)

 

 

대표적인 뮤지션

 

BUNK JOHNSON - Sister Kate


http://youtu.be/oY3Go5Ydeao

 

King Oliver's Creole Jazz Band - Dippermouth Blues (Sugarfoot Stomp) 1923


 

http://youtu.be/J-HJI464CVs

 

 

 

 

What a wonderful world - LOUIS ARMSTRONG


 

https://www.youtube.com/watch?v=A3yCcXgbKrE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