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비밥(Bop, Bebop)

 

1.    비밥 재즈의 발생

 

""또는 "비밥"이란 단어의 어원은 밥(Bop) 재즈를 노래 부를 때 사람들이 "비비비비 밥밥밥" 또는 "비밥 비밥"하는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라라라"와 같이 뜻없이 곡조에 맞추어 부르는 음절이었던 것이죠. 비밥의 탄생은 흑인 음악가들이 스윙 재즈에서 재즈 특유의 특징이 엷어진 것에 불만, 새로운 스타일의 재즈를 구축한 것으로서 종래의 그 어느 재즈보다도 아프리카적인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밥 재즈 시대를 연 음악가로는 찰리 파커(Charlie Parker, 색소폰)를 대표자로 들 수 있으며, 밥 재즈는 초기부터 매우 특이하고 독창적인 성격이 강하여 대중의 호응을 받지 못했습니다. 즉 음색이 대단히 강하고 자극적으며, 화음에 있어서도 감화음 이라든가 7, 9, 11도 화음을 사용하였고, 템포는 바른 편이며, 율동감이 별로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와 같이 난해하고 충격적인 비밥 재즈는 예술성이 강하여 예술 음악으로 인정받게 되었으며, 비밥 이전의 재즈를 비밥에 대칭된다는 의미에서 전통 재즈 혹은 고전 재즈(Traditional Jazz, Classical Jazz)라고 부릅니다. 

 

비밥 재즈는 예술성은 강하지만 대중에게는 물론이고 재즈 음악가들 사이에도 외면하는 이가 많았습니다. 따라서 방송 출연은 하기도 어려웠고, 레코드 취입은 뒤늦게 1945년에야 이루어졌습니다. 비밥이 인기가 없었으므로, 한편으로 전통 재즈인 뉴 올리언즈 재즈를 비롯하여 딕실랜드 재즈 등이 리바이벌 붐을 일으켰으며, 블루스, 스윙에서 파생된 부기우기 등이 그 당시에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비밥 재즈가 예술 재즈로 등장하게 됨으로써 1945년부터는 재즈의 세계도 민요[지방 블루스<land-blues>, 도시 블루스<city-blues>, 대도시의 흑인을 중심으로 하는 리듬과 블루스<rhythm and=" Blues=">, 뉴올리언즈 재즈] [춤과 오락 음악 (딕실랜드<dixieland>, 스윙<swing>), 예술음악(비밥<bebop>)]등으로 분류되게 되었고 각각 그 특징을 살려 계속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2.     비밥 재즈의 음악적 특징

 

비밥 재즈는 전술한 바와 같이 매우 혁신적인 성격을 보여줍니다. 우선 즉흥성이 매우 강하므로 솔로들이 몇명만 모여 만들어진 캄보 밴드(Combo Band)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색소폰, 트럼펫, 피아노, 콘트라베이스, 드럼) 비밥 재즈에서 특이한 점은 피아노가 리듬악기로 등장하여 화음을 받쳐주는 역할을 하고, 드럼은 박자를 짚어주는 리듬악기로서가 아니고 독자적인 리듬 형태를 보유하여 기교적인 면을 강조함으로써 멜로디 악기와 동등한 관계를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거친 음색, 현대적인 화음구성과 함께 8분음표 또는 16분음표로 계속되는 빠른 리듬은 광포하며 굉장히 전율적인 것이 특징입니다.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찰리 파커(Charlie Parker, 앨토 색소폰), 존 디지 질레스피(John "Dizzy" Gillespie, 트럼펫)와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 트럼펫), 텔로니어스 몽크(Thelonius Monk, 피아노)와 버드 포웰(Bud Powell,피아노), 마일드 잭슨(Milt Jackson, 비브라폰), 오스카 페티포드(Oscar Pettiford, 콘드라베이스)와 찰리 밍구스(Charlie Mingus, 콘트라베이스), 찰리 크리스챤(Charlie Christian, 기타), 케니 클락(Kenny Clarke, 드럼)과 맥스 로치(Max Roach, 드럼)등이며, 시기는 1940년에서 1955년까지로 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뮤지션

 

Charlie Parker - All the things you are

 

http://youtu.be/UTORd2Y_X6U

 

Jazz Classics: Dizzy Gillespie - A Night In Tunisia

 

http://youtu.be/BQYXn1DP38s

 

Blue in Green by. Miles Davis

 

http://youtu.be/PoPL7BExSQU

 

Max Roach at his best

 

http://youtu.be/cS-xiX64HGQ

 

 


재즈를 이야기할 때 꼭 들어가는 이 말 스윙. 빅밴드와 같은 재즈음악의 대부분은 이 스윙이 들어가 있습니다. 음악과 춤 이 두가지가 꼭 들어가는 신나는 재즈음악 스윙. 이번편에는 스윙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1.    스윙(Swing)이란

스윙(Swing) : 흔들리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스윙의 특징은 율동감입니다.

 

이러한 율동감을 위해서 이전까지의 2박자 재즈가 아닌 4박자 연주가 주류를 이루게 되는데, 스윙의 4박자는 1,2,3,4를 그냥 나열하는식 이 아닌 “~~~~” 하면서 'and'에 악센트를 줌으로써 기존 연주에 강한 율동감을 유도하는 형식이었다고 합니다.

 

EX)1-2 and 3-4 and

 

대부분 스윙 스타일 그룹들은 적어도 10명의 멤버로 구성 되었으며 적어도 3.4개의 섹소폰, 2,3개의 트럼펫, 2,3개의 트럼본, 피아노, 기타, 베이스, 드럼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폭발적인 업비트의 리드미컬한 특성을 갖는 음악으로 노래에 따라서 우아하게, 또는 그루브하고 펑키하게 표현하는데, 풍부하고 호소력있는 빅밴드 스윙음악은 청자의 감상이나 흥미정도에 따라서 표면적으로 고양 시킬수도 있고, 또 심지어 내면을 움직이게도 합니다.

 

스윙이 성장하게 된 데에는 미국 경제의 호전과 더불어 대중매체의 발달 역시 한 몫 했다는 점이 간과해선 안 될 중요 요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해서 대량으로 보급된 라디오와 영화 등은 그동안 클럽과 연주회로만 겨우 접할 수 있었던 재즈 뮤지션들을 일반화 했는데, 바로 이때 바람과 같이 나타난 사람이 베니 굿멘(Benny Goodman)입니다. 파산 직전이었고, 무명이며, 백인(당시 거의 모든 유명 재즈 연주자는 흑인)이었던 클라리넷 연주자 베니 굿맨'Let's Dance' 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그의 빅밴드와 함께 연주했는데 이 음악이 엄청난 히트를 칩니다. 그 이후의 미국 음악은 거의 모두가 이런 신나는 음악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스윙 음악은 주로 댄스홀에서의 반주로 주로 쓰였습니다. 처음에 스윙에 관심이 없던 다른 재즈 거장들도 하나 둘씩 스윙의 물결에 동참하게 되고, 결국은 모든 재즈가 스윙으로 통하게 됩니다.

 

물론 스윙이란 음악 장르가 갑자기 튀어나온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많은 밴드들이 연주했던 거지만 본격적으로 이때부터 대중들에게 어필하게 된것이죠. 이때의 거장으로는 베니 굿맨, 토미도시(Tommy Dorsey, tb),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p),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 p), 글렌 밀러)Glen Miller, tb)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빅밴드를 이끌며 그야말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고 특히 이중에서 듀크와 카운트는 음악성과 대중성에서도 최고의 인기빅밴드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 두 사람은 재즈 역사상 최고의 인물들 중 하나로 일컬어 집니다. 그리고 유명한 빌리 할리데이 라는 가수가 이시기에 데뷔해서 듀크나 베니, 카운트의 빅밴드와 함께 노래했다고 합니다. 이때가 빌리 할리데이의 전성기였다고 합니다.

 

이 시대의 연주는 주로 커다란 클럽에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빅밴드가 연주를 하고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무희들은 춤을 추고, 관객들은 술을 마시는 사교클럽 과 같은 분위기지요. 이때의 클럽은 대부분 연주자와 종업원들은 흑인이고 손님들은 모두 백인이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 인종차별이 아직 남아있었다는 것을 이런 배경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백인이 튀기 힘든 재즈계에서 베니 굿맨은 특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스윙 붐을 일으켰기 때문에 '스윙의 왕' 이라고도 불렸었고 재즈 뿐만아니라 클래식에도 조예가 깊어 바르톡, 스트라빈스키 등이 그를 위해 곡을 만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스윙 시대에 최고의 빅밴드를 꼽으라면 모두가 듀크 엘링턴을 꼽습니다. 최고의 음악성과 대중성으로 30년대 재즈계에서 최고의 명인이라고 불린 인물입니다. 이후에도 듀크 엘링턴만금 재즈 역사에 영향을 끼친 사람이 몇 안되었습니다. 듀크 엘링턴은 50여년간 활동하면서 무려 1000장이 넘는 정규 레코드를 발매했다고 하고, 3000곡이 넘는 작곡을 했다고 합니다. 또한 많은 인기 연주자가 듀크 엘링턴의 밴드 출신인 것으로 유명합니다.

 

 

빅밴드 그리고 스윙재즈는 많은 사람들이 연주를 하기 때문에 편곡이 엄청나게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보통 곡은 테마 - 솔로 - 테마의 구성으로 이루어집니다. 한곡에는 미리 정해진 솔로 연주자가 있고 나머지 멤버들은 테마 부분에서는 집단적인 연주를, 솔로부분에선 솔리스트를 돋보이게 해주는 배경 연주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편곡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죠.

 

 

2.    스윙감(Swing Feel) 이란?



흔히 재즈뮤지션들(특히 보컬리스트)을 언급할 때 "그 사람은 스윙감이 없어" 혹은 "그의 연주엔 스윙감이 가득해" 같은 표현을 종종 접하곤 하는데, 스윙 외에 재즈의 다른 장르들은 이런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쿨감(Cool Feel) 이라거나 밥감(Bop Feel) 이라는 표현은 쓰질않죠. 이런 스윙감이란 용어가 재즈필과 거의 같은 뜻으로 통용되는 데에는 여러 견해가 있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설은 스윙의 대중적 인기, 그리고 전세계, 다른 장르의 음악에 미친 영향에 따른 이유가 있기도 합니다


즉 블루스형식의 곡 구조와 싱코페이션으로 대변되는 전통적인 재즈의 틀을 고수하며 세계의 일반대중에게 어필한 재즈의 하위 장르는 스윙이 최초이며 이로 인해 재즈 전반에 대한 대표성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대표 뮤지션

 

SING, SING, SING" BY BENNY GOODMAN

 

http://youtu.be/r2S1I_ien6A

 

Duke Ellington - It don't mean a thing (1943)

 

http://youtu.be/qDQpZT3GhDg

 

COUNT BASIE Swingin' the Blues, 1941 HOT big band swing jazz

 

http://youtu.be/TYLbrZAko7E

 

 

 


시카고 재즈(Chicago-Jazz)


1.     시카고 재즈의 발생 그리고 발전


 


1917,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뉴 올리언즈가 중요 해군기지로 지정되어 스토리빌의 업소들이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곳에서 일하던 많은 음악가들이 해고를 당하여 이들 중에는 미시시피강을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 세인트루이스(St. Louis), 캔자스(Kansas), 시카고(Chicago) 등으로 이주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 도시들 중 시카고는 특히 1920년대부터 재즈가 활발히 꽃피기 시작한 도시로서, 루이 암스트롱, 죠 킹 올리버, 키드 오리, 젤리 롤 모튼 같은 이들이 뉴 올리언즈에서 시카고로 이주하여 활동한 대표적인 음악가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시카고에서 새로운 연주법을 구사하여 "시카고-뉴 올리언즈 재즈" 스타일을 구축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루이 암스트롱은 시카고에서 20년대에 "핫 파이브(Hot Five)" "핫 세븐(Hot Seven)"밴드를 조직하여 뉴 올리안즈 스타일로 연주하다가, 30년대에는 그 당시 시카고의 유행대로 자신의 트럼펫 솔로 연주와 노래가 큰 역할을 맡고 그의 밴드는 뒤에서 반주만 하는 스타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스타" "쇼맨"으로서의 위치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40년대에는 "올 스타즈(all Stars)"악단을 조직하여 다시 뉴 올리안즈 스타일로 되돌아 가기도 했습니다


루이 암스트롱과 버금가는 유명한 음악가는 피아니스트 젤리 롤 모튼 이었습니다. 그는 크레올 출신으로 음악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으므로, 테마를 작곡하고 또한 이를 편곡하여 그의 밴드를 연습시켰습니다. 그의 악단의 특징은 즉흥연주의 폭이 훨씬 적었던 탓에 당시 재즈 동료들에게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시카고에서는 재즈의 세계에 백인이 진지하게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 또한 획기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백인 고교생과 대학생들 사이에 재즈는 신선한 음악으로 받아들여져 널리 퍼지기 시작하였으며, 이들 가운데 "어스틴 하이스쿨 갱(Austin High School Gang)"과 같은 모교 이름을 본딴 유명한 밴드와 빅스 바이더벡(Bix Beiderbecke, 트럼펫)같은 훌륭한 연주가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과거의 딕실랜드 재즈와는 달리 진정한 재즈 세계를 탐구하여 그 당시 백인의 취향인 "스위트 뮤직 (Sweet Music)"을 침투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들의 음악적 특징은 테마 작곡과 편곡을 역시 오선지에 철저하게 적는 방향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흑인악단보다 즉흥연주가 적으며, 솔리스트의 활약이 전체적인 밴드연주보다 앞서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음악은 흑인의 연주보다 약간 가라앉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2.     시카고 재즈의 음악적 특징

 

시카고 재즈의 전성기는 대략 1925년에서 1930년까지로 추정되며, 뉴 올리언즈 출신의 흑인 음악가들은 시카고에서 좀더 고상하고 세련되고 노련하게 스타일을 바꾸어 나갔습니다. 이들은 또한 뉴올리언즈 재즈 음반 제작을 이곳에서 실행했습니다(1923-1928). 시카고 재즈는 이러한 유래로 말미암아 뉴 올리언즈 스타일과 흡사한 점이 많지만 그 특징을 끄집어 내자면 아래와 같은 점이 있습니다.

 

(1) 합주에 대응하는 솔로의 즉흥연주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집단 즉흥연주는 쇠퇴되었다.

(2) 멜로디 악기들이 제각기 횡적으로 즉흥연주를 하기보다는 화성적으로 맞추게 되었다.

(3) 벤죠와 튜바보다 기타와 콘트라베이스를 즐겨 연주하였다.

(4) 악센트를 제2, 4박에 두어 스윙감을 더했다.(뉴 올리안즈 시대의 2박자 재즈에서 4박자 재즈로 옮겨와 약동감이 더해지는데 이를 '스윙'이라고 한다. 4박자 재즈의 최초의 공로자는 루이 암스트롱이다)

 

 

대표적인 뮤지션

 

BUNK JOHNSON - Sister Kate


http://youtu.be/oY3Go5Ydeao

 

King Oliver's Creole Jazz Band - Dippermouth Blues (Sugarfoot Stomp) 1923


 

http://youtu.be/J-HJI464CVs

 

 

 

 

What a wonderful world - LOUIS ARMSTRONG


 

https://www.youtube.com/watch?v=A3yCcXgbKrE 

 

재즈이야기1. 랙타임(Ragtime)

 




1.    랙타임(Ragtime) 이란?

 

랙타임이란 재즈를 낳은 여러 요소중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미국에서 유행하고, 1910~1915년에 그 절정을 이루었던 미국의 대중 음악 양식을 말합니다.

 

화성은 장,단조의 1, 5, 4도 화음이고 왼손 반주부는 2박자, 오른손은 예리한 싱코페이션을 가진 멜로디를 연주를 합니다. 이 음악 형태는 이름 자체만 들었을 때는 매우 낯설게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우리들이 많이 들어본 친숙한 음악이기도 하지요. 1973년에 스팅(sting)이란 영화에 쓰여 매우 유명해진 곡인 엔터테이너:The Entertainer가 대표적인 예 입니다.

 

랙타임은 피아노 독주곡으로 째즈가 자리잡기 전의 초기 스타일을 지칭하나 이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습니다. 그러나 랙타임이 째즈던 아니던 째즈의 발생에 많은 영향을 준 것만은 사실입니다. 'Ragtime'이라는 이름은 'Ragged Time'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여기서 Ragged란 말은 단어 자체로는 'Uneven(정확히 들어맞지 않은)'이라는 의미로 사실 서양적인 싱코페이션(syncopation)과는 조금 다릅니다. 음표들을 정확히 박자와 박자 사이에 놓는 것을 서양적 싱코페이션 이라고 한다면 이들을 박자보다 조금 앞이나 뒤에 놓는 것이 바로 랙타임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Ragged의 일반적인 효과는 멜로디를 정규 박자에서 벗어나게 하여 마치 그것이 박자와 박자 사이에 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겁니다. 이는 복합적인 리듬을 가진 아프리카의 드러밍에서 기원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오늘날 랙타임의 전형이라고 보이는 것들은 사실 오랫동안 발전된 여러 가지 형태의 음악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후대 사람들은 고전적인 피아노 랙타임만을 기억하는데 이는 고전적 피아노 랙타임이 째즈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반면에 랙타임 노래들은 후 대중음악의 전통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랙타임은 피아노의 측면에서 볼 때 19세기 유럽음악을 흑인들의 리듬 감각과 역동적인 연주방법을 반영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백인 연주자들도 흑인 연주자 못지 않게 뛰어난 ragtime 연주자들이 많아서 음악만 들어보아서는 누가 흑인이고 누가 백인인지 구분하기 매우 어려웠다고 합니다.

 

Ragtime이 널리 퍼지게 된 때는 '랙타임의 황금기(Golden Age of Ragtime)'였던 1900년 대부터 세계 제1차 대전 전까지, 오늘날 랙타임의 아버지(King of Ragtime Writers)로 불리우는 Scott Joplin, James Scott, Joseph Lamb에 의해 그 고전적인 형태가 확립되게 되었습니다. Joplin'AABBACCDD'로 표현되는 랙타임의 구조와 형태를 확립하여 대다수의 랙타임 작곡가들이 그 형태를 따르고 있습니다.

 

 

2.    랙타임(Ragtime)과 뮤지션이야기

 


RAGTIME의 역사는 대표적인 연주자인 Scott Joplin의 삶 속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Joplin이 뛰어난 랙타임 작곡가 중의 한 사람이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Joplin은 그 합류점이 Euphonic Sounds로 발전한 여러 요소들을 직접 경험하였기 때문이죠. 이는 세기말 미국 뿐만 아니라 유럽인들에게도 음악적인 즐거움을 안겨다 주기도 했습니다.

 

랙타임의 탄생은 일반적으로 첫 랙타임 곡이 발표된 날로 정하고 있습니다. 1895 Ben Harney Louisville에서 "You've Been a Good Old Wagon"을 발표하였구요, 이 사람이 훗날 New York City에서 랙타임을 대중화시킨 사람입니다. instrumental ragtime 1897 1월 발표된 William Krell "Mississipi Rag"이었습니다. 그러나 흑인 instrumental ragtime이 출판되기 시작한 것은 1897년 말 Tom Turpin "Harlem Rag"이 발표되면서 부터 였습니다. 이미 행진곡과 왈츠곡들을 발표한 적이 있던 Scott Joplin 1899 Original Rags를 발표하였습니다.

 

하지만 Ragtime의 역사를 단지 출판된 곡들로만 비추어 보는 것은 오해를 일으킬 소지가 많습니다. 이 관점에서 랙타임의 탄생을 보면 백인이 랙타임을 확립시킨 선구자였고 최고의 랙타임은 출판된 형태로만 존재하였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흑인들은 Krell의 오케스트라 이전부터 랙타임을 연주해 왔고 이를 통해 받은 팁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출판가들이 그들의 생동적이고 율동적인 곡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을 때 조차도 그들은 술집이나 무대에서 연주를 해 받은 팁으로 충분한 돈을 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작품을 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랙타임 곡의 첫 출판이 랙타임의 탄생을 말하는 것이라면, 정교하고 명랑한 대부분의 랙타임 곡들이 단지 작곡가 자신들 또는 소수의 즐거움을 위해 무대 뒤에서 연주되었던, 긴 임신 기간이 있었던 셈이죠.

 

랙타임의 음악적 뿌리는 미국 플랜테이션 생활 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멋진 옷을 입은 커플들이 춤을 주고 그 중 최고의 커플이 케익을 차지하는 Cakewalk가 그들이 즐긴 놀이 중 하나였습니다.

 

l  대표적인 뮤지션

 

스콧 조플린(Scott Joplin), Piano, Composer


 

1865 12 24일 텍사스주 출생 1917 4 11일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다.

<킹 오브 랙타임>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로, 어렸을때 피아노를 독학하였다.


11살때 독일인 피아노 교사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10대에 고향을 떠났습니다. 1885년부터 '93년까지 세인트루이스에서 살면서 음악활동을 하였구요. 로컬 캬바레와 살롱에서 연주를 하였고 1894년부터 시카고로 이주하여 연주하였습니다. 같은해 '텍사스 멜로디 쿼텟'이라는 자신의 밴드를 결성하여 자신의 곡을 소개하기 위해 미 국내를 돌아다니면서 연주를 하였습니다. 이후 1896년 조지 스미스 칼리지에 입학하여 랙타임에 대한 연구를 하기도 했구요. 그 후 자신이 직접 랙타임을 구사하기 시작하였고, 그의 랙타임은 세들리아의 홍등가에서 히트되기 시작했습니다.

 

3년뒤에는 랙타임 오페라 < 더 게스트 오브 오너 >가 만들어졌지만 출판되지 못했습니다. 그때 작곡된 랙이 후에 유명해진 < 이지 위너즈 >, < 엘리트 싱코페이 션 >, < 디 엔터테이너 >입니다.

1907년에는 세인트루이스, 시카고를 거쳐 뉴욕으로 진출, 로티 스톡스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조플린은 곧 매독으로 쓰러지고 1910년에는 연주가 불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감추어 은둔생활을 하였고 오랜 기간 친구였던 출판업의 스타크와도 로얄티 문제로 절교상태가 되었습니다. 그 후 죽기까지 3곡의 랙을 작곡하였고 랙타임 오페라 < 트리모니샤 >도 마지막 수년간을 소비하며 작곡하였습니다. 1915녀에는 마지막으로 시험삼아 오페라를 위해 프로덕션 기금을 만들었지만 누구에게도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고 자신의 건강도 역부족이었기 때문에 계속될 수 없었습니다.

1916년에는 맨하튼의 워즈 아일랜드 병원에 입원, 다음해인 1917년 에이프릴 풀에서 생일 마갑했습니다. 말년에 녹음된 조플린의 연주는 음도 엉망이고 상당히 부끄러운 음악들 이었습니다.

'70년대 영화 < Sting >의 주제곡으로 다시 리바이벌된 < The Entertainer >의 인기로 다시 스콧 조플린의 랙타임 연주들이 붐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Maple Leaf Rag Played by Scott Joplin 


 

http://youtu.be/pMAtL7n_-rc

 

'Original Rags' SCOTT JOPLIN (1899) Ragtime Piano Roll Legend

 

http://youtu.be/3ybSmkyDjZI

 

Scott Joplin-The Entertainer


http://youtu.be/AShLpRFhV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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