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비타민B가 부족하다는 뉴스와 함께 많이 섭취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합니다. 예전엔 C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는데 말이죠. 근데 비타민B를 복용하니 피로가 어느정도 해소되는게 사실이기도 합니다. 이건 제 경험담이구요.
이번엔 비타민B에 대해 복용량과 효과 그리고 부작용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비타민B의 부족한 경우 피로, 우울증, 두통, 식욕부진, 소화문제 등의 증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부족하지 않게 섭취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그 전에 알아야 하는 사실! 비타민 B는 총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비타민 B1(티아민), 비타민 B2(리보플라빈), 비타민 B3(나이아신), 비타민 B5(판토텐산), 비타민 B6(피리독신), 비타민 B7(비오틴), 비타민 B9(엽산) 및 비타민 B12(코발라민) 등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건강한 성인의 경우에는 일반 식습관에서 충분한 양의 비타민 B를 섭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타민 B 결핍증이나 특정 질환으로 인해 식이에 충분한 비타민 B 섭취가 어려운 경우에는 보충제로 복용할 수 있어요.
그리고 각 비타민 B의 복용량과 효과 그리고 부작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비타민 B1을 티아민이라 부르는데요. 하루 섭취량은 성인 남성 기준 1.2mg, 여성 기준 1.1mg입니다. 에너지 생성과 신경 기능 유지에 도움을 줍니다. 비타민 B1 결핍증은 베리베리라는 질환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비타민 B2는 리보플라빈이라 불러요. 하루 섭취량은 성인 남성 1.3mg, 여성 1.1mg입니다. 셀포진 및 두드러기 관리에 도움을 줍니다.
비타민 B3는 나이아신이라 하는데요. 하루 섭취량은 성인 남성 16mg, 여성 14mg입니다. 에너지 생성 및 피부 건강 유지에 도움을 줍니다. 과다 복용 시 열감, 구토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비타민 B5는 판토텐산이라 합니다. 하루 섭취량은 성인 남성 5mg, 여성 5mg입니다. 피부 건강 및 에너지 생성에 도움을 줍니다.
그리고 비타민 B6은 피리독신이라 하고, 하루 섭취량은 성인 남성 1.3mg, 여성 1.3mg입니다. 당뇨병 및 심장 질환 예방에 도움을 줍니다.
비타민 B7은 비오틴이라 하며, 아마 많이 들으셨을겁니다. 하루 섭취량은 성인 남성 30mcg, 여성 30mcg입니다. 피부 건강을 유지하며 비타민 B7 결핍이 있을 경우 피부 관련 질환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비타민 B9는 엽산으로, 하루 섭취량은 성인 남성과 여성 모두 400mcg입니다. 태아의 뇌 및 신경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비타민 B12는 코발라민이라 불리며, 하루 섭취량은 성인 남성과 여성 모두 2.4mcg입니다. 혈액 생성과 두뇌 기능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결핍증은 노화로 인한 신경계 기능 손상 등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이상 비타민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은 세세하게 풀이해봤는데요. 저는 위 활력비타민B가 그나마 낫더군요. 그래서 한번 걸어보았습니다. 이상 이 내용이 도움이 되었길 바라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요즘 바쁘게 일하고 신경쓸 게 많아서 그런가요? 술을 전혀 마시지 않음에도 간 수치가 안좋게 나타납니다. 병원을 가고나서 결과에 좀 놀랐네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이럴때 밀크시슬을 복용하면 좋다하여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한 2주 정도 복용하고 있는데요. 저는 괜찮더군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간에 도움을 준다는 밀크시슬 효과와 복용시간 부작용에 대해 그리고 여드름과 상관관계에 대해 알아보아요.
밀크시슬은 뭔가요?
밀크시슬은 간 건강에 도움을 주는 식물로, 간세포를 보호하고 해독 기능을 강화해줍니다. 또한 지방 간증에도 효과가 있어서 건강한 간 기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밀크시슬이 어떤 부분에 도움을 주나면 인체의 간에서 독소 및 기타 유해 물질을 처리하는 주요 기능을 보호하고 지원합니다. 간 건강 외에도, 다른 감염증, 알러지, 당뇨병, 고혈압, 암 등의 상황에서도 효과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밀크시슬을 섭취하면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의사와 상담 후 적절한 용량을 결정해야 합니다.
그럼 부작용은 없을까요? 없지 않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한번 알아볼까요?
물론 밀크시슬은 대체로 안전한 식물성 보충제입니다. 하지만 일부의 경우 복통, 설사, 구토, 가스, 변비, 식욕 부진 등의 소화 관련 문제를 경험할 수 있어요. 그리고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모든 식물성 보충제와 마찬가지로, 밀크시슬 역시 의료 전문가와 상담한 후 적절한 용량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점 기억하시면 좋습니다.
이번엔 하루 복용량을 한번 알아볼까요?
밀크시슬의 적정 복용량은 제품의 형태, 농도, 목적 및 개인적 요인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보통, 일반적인 밀크시슬 추출물 보충제의 경우, 하루 1-3회 복용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제품 라벨의 지침을 참고하거나 의료 전문가와 상담하여 적절한 용량을 결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다른 약물을 복용하거나 기저 질환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의사와 상담을 하시면 더욱 좋겠죠?
그런데 어떤 예민하신 분들은 여드름이 나는지 궁금해 하시기도 하더군요. 이에 대한 답도 같이 가져왔습니다.
밀크시슬의 여드름 개선에 대해 체계적인 연구는 아직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수행된 일부 연구에 따르면, 밀크시슬에서 추출한 화합물이 피부 건강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밀크시슬에는 강력한 항산화 작용을 가진 실리마린이 함유되어 있으며, 실리마린은 자유 라디칼을 제거하고 세포 손상을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효과로 인해, 밀크시슬이 여드름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밀크시슬이 여드름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이 되지는 않으므로, 실질적인 피부 관리 방법과 함께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쿠팡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을 수 있음>
참고로 저는 위에 있는걸로 구입해 복용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건강기능식품은 국내보다 외국제품이 가성비도 있고 도움을 더 준다고 알고있어서요. 실제로 먹어보니 괜찮아 저는 나우푸드에서 나온걸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음악전공 지식을 활용하기 위해 그리고 그때는 보컬트레이너였기에 이 티스토리 블로그를 활용하려고 했었죠.
그 사이 음악을 그만둔 지 꽤 되었어요. 현재는 다른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버려진 블로그 ㅠㅠ
현재 제가 하고있는 일은 여행작가 그리고 얼마전 금융쪽 일을 하던 회사를 다녔지만 그만둬서 백수(?) 는 아니고 부업으로 하던 해외직구몰 을 운영하고 있었던걸 본격적으로 한 지 얼마 안되었고, 추가로 사진쪽 일을 하고 이 또한 본격적으로 하고싶은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내 욕심으로 다 잘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직 제 수익은 불안정합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수익원을 찾고싶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이 블로그에 눈이 가더군요. 음악 관련 콘텐츠만 있었고 그래서 예전에 음악작업실 이름이 주소가 된 티스토리 블로그...
주소를 바꿀 수 없는 오래된 블로그를 살리고 싶었습니다.
갑자기?? 는 아닙니다. 이전부터 애드센스가 달린 이 블로그를 사용하고 싶었으니까요.
이 블로그는 이제 제가 해외직구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상품소싱하면서 보이는 상품들의 리뷰를 간단히 작성할 생각입니다.
채널은 쿠팡이 될 수 있고 네이버가 될 수 있습니다. 저 또한 물건을 팔면서 다양한 상품을 연구해야 하는 위치에 있으니까요.
또 여러가지 잡다한 정보를 올려볼 생각입니다.
기대는 안하셔도 됩니다. 어차피 제 블로그 자체를 보고 오시는 게 아닌 포스팅 하나 하나를 보고 오실 분들이 대부분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디지털노마드로 또 자립하면서 돈을 버는 과정을 담을 블로그는 이미 네이버에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성장과정 포스팅은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올릴테니 말이죠.
양반의 고장으로 유명한 경상북도 안동시는 제가 어릴적부터 한번쯤 와보고 싶었던 장소입니다.
이곳은 특정 계절만 어울리는것이 아닌 어느계절에 와도 괜찮은지역이라고 합니다. 결국 이번엔 겨울에 처음으로 가보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곳에 머무르는 시간이 짧아 조금은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곳에서 짧지만 강렬한 느낌을 받아서 좋았습니다.
참고로 도산서원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퇴계 이황 선생님입니다. 그리고 이곳은 퇴계선생님께서 후학을 양성하였고 지방 과거시험이 펼쳐지던 곳인데요. 어린분들에게쉽게이해를위한설명을드리겠습니다. 퇴계이황선생님은 1000원지폐에그려진인물입니다.
저는 이번 바이트레인 여행정모에 또 빨간조에 속해졌습니다. 그래도 제가 남자 막내 입니다.
저번 여행과는 달리 이번엔 조장같은거 하지말고 그냥 조용히 여행해야겠습니다.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서시사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시사단은 1000원 지폐 뒷면의 배경으로 그려진 장소입니다. 직접 한번 비교를 해보았습니다.
비슷한 듯 하면서 무언가 조금 다른 느낌을 받습니다. 이는 한참 걸어가서 다른방향에서 이곳을 바라봐야 제대로 된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리 저리 사진을 찍다 보니 다들 멀리 가버렸습니다.
이곳에서 해설하시는 마을 유지분이 계셨는데 얄짤없이 설명을 하시고바로다음장소로가버리셨네요. 얼른쫓아가야겠죠??
저기 보이는 곳이
시사단 입니다. 도산서원 앞 낙동강 강가에 1792년 정조가 퇴계선생님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도산서원에서 지방별과를 보았던 자리에 세운 비각입니다. 그당시 지방별과 응시자가
7000여명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저기 보이는 장소는 사진을 찍기 좋은 뷰 포인트라고 합니다.
명당인 셈이죠. 다만 아쉬운 점은 이곳을 둘러 볼시간이 너무 부족한 나머지 저곳을 올라가보지 못했다는 점...
열의를다해 설명하시는 지역 유지분의 해설을 듣고 있는데 부연 설명이 많은지라 오랜 시간 이곳에 있었습니다. 저는 핵심만들었으면좋았을텐데저희연령대와는잘맞지않았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만 ...
다른 계절에 비해 겨울의 안동 그리고 도산서원은 멋지지
않을 수 있지만 오히려 저는 순수한 모습으로부터 나오는 매력에 좋은느낌을받았습니다.
일상속에서항상마주하는 빌딩숲과 서류의 산 속에서
지쳐서 그렇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우물이 있었습니다. 한자 그대로 우물 정 자 모양으로
되어있네요.
이 우물은 열정 이라는 이름을 가진 우물입니다.
직역을 하자면 '맑은 우물’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퇴계 이황 본인이 이와 같은 이름을 지어주고 돌우물 앞에 이름을 새긴 화강석을 세웠다고 합니다.
이곳은하고직사라는곳입니다.
하고직사에서바로위로가면보이는이곳은상고직사 입니다
도산서원안에있는도산서당에왔습니다.
도산서당은 퇴계 이황 선생님께서 직접 설계하고 지은 삼간 기와집 입니다.
말년에
이곳에 계시면서 후학을 양성하고 책을 읽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마당 한편에는 우물이 보이네요. 잠깐 멍때리면서 우물만 바라봅니다...
이곳 안동에 대한 모든 정보와 역사를 알고계신다는
이장님? 아니 지역 유지분이라 하겠습니다. 이야기를 한참동안 듣고 있었습니다. 정말 유익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중간에 이건 너무 삼천포로 흘러가지 않나... 라고 생각되는 이야기가 너무 많아 여행하는 시간을 뺏긴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열정적으로 설명을 하시기에 쉽사리 자리를 뜨기가 힘들었습니다.
물론 이 부분은 아직 20대인(지금은 30대로들어서버린…) 저 개인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중년 이상의 여행객이라면 이러한 해설이 달갑게 여겨질 수 있으며 좋은 여행코스가 될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날씨가참맑네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여행정모팀
외에 많은 분들이 이곳을 방문했습니다. 물론 저도 수많은 방문객 중에 한명이긴 합니다.
더 이상 할 이야기 소재가 떨어져 아래의 사진들과 함께 짤막한 포스팅을 한번 마쳐보려 합니다.
이 글의 사진은 Nikon D5300
으로 담아내었습니다. (Photo by Daniel K)
ⓒ2017 Daniel
K(dduksaboo) Inc. All rights reserved.
라틴음악은라틴아메리카 음악을 줄인 말입니다. 서양의 클래식과 동양의 음악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제 3세계의 민족음악이라고 할 수 있죠.
라틴아메리카 전체 음악을 가리키기 때문에 중남미 음악이라고도 불립니다. 아메리카대륙중스페인(에스파냐) 포르투갈의영향을받은지역을보통
라틴아메리카라고일컬은데, 이런에스파냐와포르투갈의음악외에아메리카대륙의원주민의음악과,
아프리카에서노예로끌려와아메리카대륙에살게 된흑인의음악도라틴음악의형성에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라틴아메리카여러나라음악은에스파냐와포르투갈의음악인디언들의음악, 흑인의음악이라는 3개의요소가다양하게섞여 혼합된 음악이라할 수 있습니다.
살사(SALSA)
현재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Salsa(살사)의 음악적인 한 장르는 쿠바인의 대중음악과 민속음악에 뿌리를 둔
"Latin Music"(라틴음악)으로 우리 대중에게 쉽게 알려져 있으며
또한 재즈의 구성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은 한층 더 강한 음악적인 의미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름하여
"Salsa(살사)"의 문학적인 의미는 스페인 말로 "sauce"(양념)이라는 뜻이며 1960대에 유행하게 되어 아주 뜨겁게 Afro-Cuban(아프로큐반)이라는 음악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Salsa(살사)를 공부하자면 쿠바를 빼먹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쿠바인들이 Salsa(살사)에 대해서 많은 공언을 했기 때문이죠. Puerorico, Venezuela, Mexico, Colombia, The Dominica Republic도 Salsa의 발전에 많은 공헌을 했지만 그래도 쿠바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초창기의 살사의 음악적인 장르는 결코 라틴 음악으로 묘사되어
지지 않았고 많은 연주인들 중 특히 평생을 연주와 음악 속에서 살아온 나이든 연주인들 만이 오로지 그들의 방식대로 살사를 선호 해왔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에 와서야 서서히 그러한 간격을 깨트리고 함께 연주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면 Top Latin Star가 출연한 "A New
Salsa Music TV show"라는 대대적인 Show program을 통해서
비로소 "살사 쿠바나"로 쿠바인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인정을 받기 시작했던것이죠.
Salsa(살사)는 이 이전까지 댄스리듬 으로나 음악적인
한 장르로서도 인정 받지 못했으며 단순히 그 음악적인 명맥만을 유지해 오기만 했습니다. 작곡가인 Ignacio pineiro(1888~1969)가 Echale
Salsita(1920년대경)라 는 곡을 발표했을 때 많은 댄서들은 다급하게 연주인 들을
재촉하여 라틴 음식을 만들 때 필요한 자극 있는 양념(Salsa)맛을 참조하여 토착적인 음식의 강한
맛을 내서연주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춤에 사용되어 졌죠
Salsa(살사)는 초창기 라틴음악의 스타일로부터 완전히
구분 되어지며 Puertorican New Yorker들에 의해 발전된 New York Sound로 정의를 내릴 수도 있습니다. 음악적인
기원은 몇 가지 상반된 견해를 내릴 수도 있으나 재즈나 록의 음악적인 어휘에 관심을 더한 쿠바 음악속에 대장간과도 같은 장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Salsa(살사)의 음악형식은 많은 리듬 스타일과 음악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Salsa(살사)를 이해 하려면 쿠반 음악이 흑인들과 유럽의 음악과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인지하셔야 됩니다. 그리고 많은 문화들이 합쳐서 Salsa의 독특한 느낌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Salsa(살사)의 특징을 말하자면
첫째, 악기, 댄스, 댄스, 멜로디(선율),가사 등 여러가지 음악적 요소가 특이하게 발전을 했습니다.
둘째, 드러밍이
특이해서 쿠바에서도 가장 눈에 뜨이는 점이다. 옛날에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이 쿠바로 갔을 때 그 사람들이
갖고 있었던 드럼스타일을 살릴 수 있었던 것이죠. 거기에 특이한 드러밍 스타일이 나왔던 것입니다.
셋째, 살사의 노래가
음악과 잘 조화 된다는 것이다. 살사의 기막힌 박자가 쿠바의 대중성과 연결이 됩니다.
아프로-큐반 음악에서
Salsa(살사)는 라틴 퍼커션이 주가 되기 때문에 Salsa(살사)를 하려면 먼저 퍼커션부터 배워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고적으로 Salsa(살사)와는 조금 틀린 것이 있는데 룸바, 손, 단잔등이 있다. 이런 장르는 아프리카, 유럽인과 종교적인 것들에 의해 영향을 받아서 생겨난 것입니다. 이쯤에서
참고적으로 브라질 음악의 대명사격인 삼바와 보사노바의 유래에 대해서 잠시 둘러볼까요?. 현재 우리에게
알려진 라틴음악을 분류하자면 세부적으로 여려 장르가 있겠지만 크게 나누면 중남미의 Salsa(살사)와 브라질의 삼바와 보싸노바로 구분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록 음악은 1950년대 초 미국에서 생겨난 대중음악의 한 형식입니다. 록은 대개 보컬, 전자기타, 그리고
강한 백비트(록음악 특유의 강한비트)로 구성되며, 백비트는 색소폰과 같은 여러 종류의 악기들에 의한 스타일이 일반적입니다. 그리고
젊음의 기쁨을 찬양하거나 때로는 젊은층이 가진 욕구 불만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lROCK의 명칭 및 정의
록은 1950년대 로큰롤(Rock and
Roll)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록이라는 용어는 정의하기 애매한 구석이 있지만 때때로 여러
장르들이 모호하게 섞여있는 것, 이를테면 소울, 헤비메탈
심지어는 힙합을 포함하는 것까지, 나타내는 말로 쓰입니다. (넓게
보자면 로큰롤과 같은 의미를 지니며 좁게 보면 로큰롤과 다른 의미를 지고 있습니다.)
lROCK의 특징
록 음악의 사운드는 전통적으로 전기기타를 중심으로 하며, 베이스 기타 그리고 드럼과
심벌이 포함된 드럼 킷을 사용합니다. 피아노나 하몬드 오르간, 신디사이저와
같은 건반악기도 역시 자주 사용됩니다. 록 밴드는 일반적으로 보컬리스트, 리드 기타리스트, 리듬 기타리스트,
베이시스트, 드러머 등의 역할을 나누어 맡는 둘에서 다섯 정도의 멤버로 구성됩니다. 이 일반적인 형태는 버디 홀리가 고안해냈고 비틀즈가 확립하기도 했죠. 록
음악은 전통적으로는 백비트가 있는 4/4 박자의 반복적인 리듬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리고 스타일적으로 매우 다양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으며, 복잡한
역사와 다른 장르의 요소의 잦은 유입 등의 이유로 록이란 무엇인가를 음악적으로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lROCK의 역사
록음악은 처음 시작된 후 급속도로 퍼져나가 전세계 젊은 세대의 문화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1950년대 초 미국에서 처음 생겼을 때는 로큰롤이라고 불렀는데, 기성
세대들은 로큰롤을 한 때의 유행으로 받아들여 무시하거나 사회에 대한 도전이라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기성
세대는 이전에는 스탠다드 팝을 즐겼습니다.) 그렇지만 1960년대
중반, 로큰롤이 음악 형식의 하나로 자리잡으면서 폭넓은 관심을 끌었고,
1960년대 후반에는 록음악의 뿌리였던 블루스와 컨트리 음악에서 벗어나 간단히 록음악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록음악은 음반사업뿐만 아니라 영화, 패션, 정치 풍조에까지 영향을 미쳤으며, 음악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음악과 결합하면서 오늘날까지 계속 발전해오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히피 무브먼트, 모드 사조, 비트 사조 등이 있죠.
lROCK 장르의 변천사
1940년대 재즈가 점점 어려워짐에 따라 대중에게서 멀어졌습니다. 재즈의 쇠퇴와 록의 도래 사이의 과도기 시절인 1950년 대 초반에는
스탠다드 팝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대표적인 가수로서는 빙 크로스비, 프랭크 시나트라, 팻 분, 냇 킹 콜 등이 있었습니다. 미국 사회의 주류였던 백인 기성 세대들이 스탠다드 팝을 즐겼다면 비주류 계층인 흑인들은 블루스 음악을 즐겼으며
농촌의 백인들은 컨트리 송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블루스 음악은 스윙 재즈의 영향을 받아 곧 리듬 앤
블루스로 진화했구요. 그리고 컨트리 송은 여러가지 형태로 발전을 하고 있었는데요. 우리나라의 리듬 앤 블루스 음악과는 달리 보통의 리듬 앤 블루스는 초기 로큰롤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로큰롤은 점점 인기를 백인 청소년에게 많은 인기를 끌게 되었는데 가수는 주로 흑인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척 베리와 리틀 리차드가 있었죠. 이에 음반 제작자들은 틈새 시장을 노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흑인의 음색을 낼 수 있는 백인 가수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숨겨진 리듬
앤 블루스 명곡을 백인이 커버를 하면 무조건 성공한다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죠. 따라서 백인들이 가수로
등장하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엘비스 프레슬리와 제리 리 루이스, 빌 헤일리, 버디 홀리 등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장르를 로커빌리 라고 하는데
이것은 로큰롤과 컨트리 송의 진화 형태인 힐빌리를 합친 말이기도 합니다. 이런 음악들은 미국 주류 사회를
뒤흔들었습니다. 그리고 영국으로 건너가 리버풀 등 항구 도시에서 유행을 하게 되었죠.
로큰롤은 재즈와 결합하여 스키플 사운드를 만들어냈는데 대표적으로 비틀즈가 있었습니다. 주류가
로큰롤을 하였다면 언더그라운드 비주류는 블루스와 재즈 음악을 했습니다. 기존의 블루스 음악은 미국에서
탄생했는데 처음에는 통기타와 하모니카 등으로 이뤄진 컨트리 블루스와 델타 블루스 등이 있습니다. 곧
미국이 발전을 하게 되고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 블루스에도 전기 악기가 접목되어 일렉트릭 블루스가 되었는데 특히 시카고에서 인기를 끌어 시카고
블루스라고 부르게 됩니다. 이런 음악은 로큰롤이 도래하기 이전 영국으로 전해져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백인)들은 브리티시 블루스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아티스트로는 알렉시스 코너와 존 메이올이 있구요.
로큰롤을 하지 않았던 영국 가수 중 클리프 리차드는 미국 공연을 시도했으나 실패를 하고 맙니다. 비틀즈가 그 다음 공격을 하여 성공을 했는데 이를 브리티시 인베이전이라고 합니다. 뒤이어 애니멀스, 데이브 클락
5, 무디 블루스 등이 진출을 하였죠. 이런 가수들은 모드 사조를 이끌었는데 이것은 프랑스의
누벨바그 사조에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이런 음악 이외에도 브리티시 블루스를 하던 사람들도 미국 진출을
하게 되었는데 대표적인 가수가 롤링스톤즈였습니다. 당시 미국 사회는 베트남 전쟁으로 혼란스러웠는데 기성
세대에 반발한 젊은이들이 비트 사조에 빠져들었고 곧 히피 무브먼트로 진화했습니다. 이들은 마약을 하였는데
음악적으로도 영향을 받아 사이키델릭 록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사이키델릭 록과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정치적인 언급을 하는 포크 송도 등장했습니다. 대표적으로 피트 시거와 밥 딜런, 조안 바에즈 등이 있었죠. 한편 이런 식으로 미국식 사이키델릭 록이
마냥 외쳐대는 밴드였다면 영국식 사이키델릭 록은 예술적, 음악적인 실험을 많이 하게 됩니다. 비틀즈의 영향을 받은 밥 딜런이 포크 송과 로큰롤 사운드를 절묘하게 결합시킨 포크 록을 만들어냈습니다. 영국식 사이키델릭 록의 발전으로 곧 프로그레시브 록이 등장하게 되었고 브리티시 블루스의 영향으로 블루스 록이
등장하게 됩니다. 블루스 록을 하던 밴드였던 크림은 하드 록을 만들어내게 되었고 지미 헨드릭스는 사이키델릭
사운드와 결합시켜 하드 록을 더욱 발전시키게 됩니다.
Rock의 세부 장르는 아래와 같습니다.
얼터너티브 록, 아나톨리안 록, 아레나
록, 아트 록, 비트 음악,
블루스 록, 브리티시 인베이전, 켄터베리 신, 첼로 록, 크리스천 록, 코미디 록, 컨트리 록, 프랫 록, 개러지
록, 글램 록, 하드 록,
하트랜드 록, 헤비 메탈, 인스투러멘탈 록, 잼 밴드, 크라우트 록, 팝
록, 파워 팝, 프로그레시브 록, 사이키델릭 록, 쟁글 팝, 포크
록, 펍 록 (영국, 호주), 펑크 록, 랩 록, 로커빌리, 로큰롤, 삼바 록, 소프트
록, 서던 록, 스토너 록,
서프 록, 고딕 록 · 전자 록 등
Funk는소울, 리듬 앤 블루스, 재즈 등의 장르에 영향을 받아 1960년대 성립된 미국 흑인 댄스
음악의 장르입니다. funk는 1950년대 미국 흑인들 사이에 "성 행위의 냄새", "지저분한 냄새" 등의 뜻으로 쓰이는 속어였습니다. 때로는 ‘훵크’로 표기하기도 합니다.
펑크 음악을 특징짓는 요소는 한 음을 기본으로 꿈틀거리며 싱코페이션이 많이 들어간 베이스, 강한
관악기와 강조되는 리듬 기타, 소울이 강한 보컬 등이 있습니다. 보컬은
멜로디보다 리듬을 강조할 때도 많습니다.
펑크를 대중에게 알린 아티스트는 대표적으로 제임스 브라운이 있습니다.
lFunk의 역사
펑크 라는 단어는 1950년대 재즈 음반에 등장하였지만 음악 장르로 펑크가 확립된
것은 1960년대 말 제임스 브라운, 슬라이 앤드 패밀리
스톤, 아이슬리 브라더스, The Meters 등의 활약에
힘입었기 때문입니다.
펑키는 1970년대를 지나면서 발전된 음악 제작 기술(신디사이저, 드럼 컴퓨터)과
함께 더욱 상업화 및 대중화되어 디스코 음악으로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이 시대에 조지 클린턴은 팔리아먼트와
펑카델릭의 활동으로 펑크의 하위 장르인 P-펑크(P-Funk)를
만들어 냈다. 1990년대에는 하우스 음악으로 발전하였고, 많은
랩과 힙합 음악가들 또한 자신들의 음악이 펑크를 뿌리로 삼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 음악 장르가 성립할 때부터 이미 펑크와 재즈는 관계가 깊었습니다. 허비 행콕, 마일즈 데이비스, 마커스 밀러 등의 재즈 음악가들은 펑크에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스탠다드 재즈 곡들이 종종 펑크로 편곡되어 연주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레드 핫 칠리 페퍼스 같은 록 밴드도 펑크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하위 장르는
아래와 같습니다. 특이한 부분은 이 중 애시드 재즈도 포함된다는 점이지요.
G-펑크 (G-Funk), P-펑크 (P-Funk), 펑크 잼 (Funk Jam), 브릿 펑크 (Brit Funk), 펑크트로니카 (Funktronica), 재즈-펑크 (Jazz-Funk), 애시드 재즈 (Acid Jazz)
소울은 영혼 또는 정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혼이 들어간 음악' 그래서 '진한 음악'을
소울이라고 하구요. 농도가 짙고 그래서 날카로움을 음악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른 음악 장르 특히 R&B(알앤비)와
혼동될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음악을 소울이라고 하는지,
그리고 어떤 환경에서 발전해왔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흑인음악의 일축을 담당하고 있는 소울, R&B에서 파생 되었지만 사뭇 다른
배경을 가지고 태어난 음악입니다.
거의 모든 흑인음악의 탄생 배경이 그러하듯 소울 역시 억압받는 흑인들의 더 나은 내일과 백인 사회에 대한 한을 토하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Blues의 탄생배경에 기원합니다.)
lSoul의 역사
미국에서 소울이란 말이 널리 퍼지게 된 때는 1960년대의 일입니다. 물론 이 말은 이전인 1950년대에 비밥 재즈 뮤지션들의 앨범에서
사용되었구요. 대표적인 예가 색소폰의 대가인 존 콜트레인의 1958년
앨범 제목이 소울과 자신의 이름을 합성한 소울트레인(Soul train)입니다.
그러나 소울을 의미 있게 만든 것은 1960년대 민권운동 정확히 말하자면 흑인 공민권
운동이었습니다. 이 무렵 흑인들은 그동안 당연시해오던 멸시와 푸대접의 굴레를 벗고 자신들의 권리회복에
나서게 되었습니다다.
'우리가 백인보다 못할게 뭐냐? 그런데 왜 우리는 그들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가?'
이런 의문은 곧바로 백인지배사회에 대한 불만과 분노로 이어졌으며 마침내 1960년대
중반이후 도시 흑인 빈민가에서는 대규모 폭동이 연쇄적으로 발생되었습니다. 당시 미국의 내전을 방불하게
했던 1967년 디트로이트 흑인 폭동의 경우 이 소요를 진압하기 위해 정부군만 16000명이 파견되었을 정도였죠.
이렇게 분노한 흑인, 강경해진 흑인들의 음악이 어떻게 변했는지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당연히 미친듯 몸을 흔들어대며 외쳐대고 질러댔을 것입니다다.
그것이 바로 소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빌보드차트는 흑인음악 용어를 R&B에서 소울로 바꾸기도 했습니다. 흑인들은 서로를 소울
브라더, 소울 시스터 라고 일컬었고 '소울 트레인'이라는 TV프로가 신설되기도 했습니다. 단맛의 포테이토 파이와 같은 소울푸드도 등장했습니다. 흑인에 관한
한 모든게 소울이라고 할 수 있는것이죠.
* 소울은 흑인 공민권운동에 의해 배양된 '흑인들의
자긍심'을 반영했으며 그 형식은 샤우트가 대변하듯 '분노의 폭발'을 취했습니다. 흑인들은 이 무렵 200년 가까이 이어져온 움츠린 자세를 버리고
어깨를 펴고 거만하게 팔자걸음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lSoul의 발전
소울 음악의 시작은 시각장애를 이겨내고 최고의 경지에 이른 아티스트 "Ray
Chales(레이 찰스)"에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가스펠에 블루스를 입혀 노래를 하곤 했는데 이러한 시도는 당시엔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이에대한 반응은 극과 극이었습니다. 신성모독 이라는 사람들과 예술적인 배합 이라는
사람들 이렇게 여러 주장이 있었죠.
“What i'd say”를 통하여 Ray
Chales(레이 찰스)는 소울이라는 장르를 창조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해들 돕기 위해 조금 쉽게 설명하자면 소울이라는 장르는 애초에 흑인영가(가스펠)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이를 레이찰스로 인해 재조명 되었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이죠.
레이 찰스는 보수적인 백인 사회에 대한 일침, 그리고 사랑에 대한 서글프고 때론
열정적인 고백 등을 음악에 담았는데 블루스와 가스펠을 적절하게 재조합 하여 예술적으로 빚어낸 아티스트 이기도 합니다..
소울 음악은 펑크 음악, 그리고 트렌디한 가스펠에도 영향을 미쳤고 재즈처럼 지역마다
색다름 형태의 소울 음악의 형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에 다른 장르들과 교류가 활발하게 일어나 영향을 받던 타 흑인음악들에 비하여 소울음악은 꾸준하게 그 유전자를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이 외에 "Luther Vandross(루더
밴드로스)", "James Brown(제임스 브라운)",
"Aretha Franklin(아레샤 프랭클린)", "Otis
Redding(오티스 레딩)", "Al Green(알 그린)"등이 대표적인 소울음악가들이 등장하였습니다.
그 이후부터 Pop Soul(팝소울) 과 Ulban Soul(어반소울)이 등장하였고 차츰 흑인들만의 깊은 의식적
세계와 그때까지 순수했던 뿌리 깊고 짙은 검은색의 유전자들이 흔들리고 여타 음악처럼 여러 갈래로 갈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전에도 시카고 계열 멤피스계열 등으로 분류되고 세션들의 악기 사용과 창법에 의해
분류되기도 하였으나 그 뿌리는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
이때부터 우리가 잘 아는 "Toni Braxton(토니 브랙스톤)", "Whitney Houston(휘트니 휴스턴)".
"Michael Jackson(마이클 잭슨)"등이 등장하게 되는데 우리가
보통 R&B라 여기는 흑인음악들의 범주에 아주 착실하게 속하게 됩니다.
그리고 음악작업 방법의 다양화되는 시대에 맞추어 각종 시퀸싱 프로그램의 영향을 많이받고 차츰 세션과 기계적 사운드의 비율의
차이를 좁혀가게 되었습니다.
힙합과 긴밀한 교류를 하게 되었고 일반적인 팝과 손잡아 사실적으로 독자적인 소울의 색깔을 많이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달콤한 러브 트랙들의 홍수속에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게 되고 소울 음악의 저변을 폭 넓게 확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한번 진한 소울의 전성시대가 도래하게 되는데,
lNeo Soul의 등장
이것은 다시금 소울다운 소울, 한마디로 60~70년대의 Old School Soul의 도래를 의미하는것으로 그 당시의 순수했던 정신과 음악적 스타일을 가지고, 그 위에 새로운 감각을 접목한 것으로 아주 큰 임팩트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것은 동시다발적인 것으로 요즘 '이것이 소울음악이다!!'라는 종류들이 생겨난것이죠.
그 선봉에는 "Maxwell(맥스웰)"이
있습니다. 1973년생인 그는 1996년 Urban Hang Suite을 통하여 데뷔하는데, 끈적끈적하고 늘어지다가도
섬세하게 가성으로 고음을 처리하는 보컬링은 잔잔한 세션들과 어우러져 큰 쇼크로 다가왔습니다.
Neo Soul의 특징이라면 최대한 기계적 사운드를 줄이고 생음악 위주의 간결하고도
잔잔한 세션이 특징인데 이를 가장 잘 살린 아티스트는 "India Arie(인디아 아리에)"이다. 그녀의 음악을
"Acoustic Soul" 이라고도 하는데 그녀의 데뷔 앨범명 역시
Acoustic Soul입니다.
어쿠스틱 기타와 약한 스네어와 베이스 킥의 단순한 비트 위에 가벼운 듯 센스 넘치는 보컬을 하는 그녀는 네오 소울계의 진주라고
할수있습니다.
"D'Angelo"역시 네오소울의 일축을 담당하고 있는 아티스트
입니다. 그는 기존 소울의 희귀에 새로운 요소를 강하게 투입한 아티스트라 할 수 있습니다.
1955년 Brown Sugar를 들고
나오자마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소울의 범주와 여타 장르의 경계선상에 서있는 음악들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많은
힙합 아티스트들과 교류를 하며 음악적 도움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Musiq Soulchild(뮤지크 소울차일드)", "John Legend(존 레전드)".
"Eric Benet(에릭 베넷)". "Alicia Keys(알리샤
키스)"등 많은 네오소울 아티스트들이 소울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으며, 네오소울 조차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 장르들과 결합한 소울음악들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가장 소울다운
소울은 역시 탄생과 함께한 걸쭉하고 짙은 검은 색깔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울분과 한 그리고 삶과 사랑에 대하여 여과없이 때론 흐느끼면서 강렬하고 때론 늘어지게 단어 그대로 영혼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죠.
lSoul의 종류 및 특징
Blue-Eyed Soul : 어디서 많이 들어보았죠? 바로 '한국의 Boyz II
Men이라 불리는 브라운아이드 소울에서 블루만 바꾼겁니다. 60년대 중반에 백인들이 R&B, Soul음악을 선보이기 시작, 70년대까지 계속 히트를
이어갔지요. 음악은 당대 흑인 뮤지션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지만, 좀
더 가볍고 세련된 'POP'적인 느낌이 있습니다.(대표 뮤지션들 : the Righteous Brothers, the Rascals, the Box Tops, Hall &
Oates, Robert Palmer, Average White Band...)
Brown-Eyed Soul : 이것도 Soul의
한 계열입니다. Latin Soul과 거의 비슷한 맥락이고, 타악기를
사용하기도 하는 독특한 스타일의 음악입니다. 특이한 형식의 음악인데 얼핏 들으면 삼바 음악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Southern Soul : 열정이 가득한 소울 계열 음악 장르입니다. 가스펠(gospel)적 요소, 촘촘한
리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8~90년대에 리바이벌 열풍이 일기도 했습니다
Memphis Soul : 위에서 접하신 Al
Green이 속한 계열입니다. 다른 계열들에 비해 팍 튀는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치우침이 없기도 하구요. Al Green이 이 계열의 표본이라고
평가되니 관심 있으시면 일단 그의 앨범 'Call me'를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Chicago Soul : 초창기 소울음악입니다.
그래서 브라스(금관악기나 목관악기)편성을 보여주는
뮤지션이 많습니다. 음악 스타일은 자유로움이 있습니다. 재즈같은… 오래되고 큰 히트가 변변찮은 탓에 우리나라에서 접하기 쉬운 음악은 아니기도 합니다.
Ulban : 부드러움, 댄서너블하고
힙합적인 요소와 대중적인 가스펠 편성입니다. 한 마디로 우리가 세련된 음악이라고 일컫는 R&B 음악을 통틀어 부르는 계열이기도 하고, 소울에만 국한되지
않고 R&B나 Hip-hop적으로 크로스오버되는 음악을
칭합니다. 대표적인 뮤지션들을 보면(Babyface, Anita
Baker, Boyz II Men, Toni Braxton, Mariah Carey, Lauryn Hill, Whitney Houston,
Janet Jackson, Michael Jackson, R. Kelly, New Edition, Prince, Smokey Robinson,
Sade, TLC, Stevie Wonder...)
Neo Soul : 앞에서 설명한 6~70년대
소울을 'Old School Soul'이라 칭합니다. 순수했던
소울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탄생한 계열이 바로 Neo Soul입니다. 물론 21세기에 맞게 R&B나
Hip-hop적인 요소를 적절하면서도 입맛에 잘 맞게 풍부한 양념을 두른 매력적인 음악으로 소울을 재창조한 것이죠. 대표 뮤지션은 아래와 같습니다.